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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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삶 속에서 만난 항아리

2017.07.10 10:33

조형숙 조회 수:72

 

 

   물항아리, 커다란 된장 항아리, 김치 항아리, 간장 항아리를 싣고 이사했다. 왕십리 기와집에서 뚝섬 양옥으로 이사한 바로 다음 날에 어마어마한 홍수가 왔다. 아직 장독대에 올리지도 못한 항아리들이 둥둥 떠다니며 서로 부딪치고 아파하다 깨어진다. 시어머니가 아끼시던 달착하고 맛진, 묵은 간장이 빗물과 함께 섞여 마당을 흥건히 적신다. 지하실까지 침범한 물은 건너방 구들을 내려앉게 했다. 집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식구들은 간단한 보따리를 싸서 언덕 위에 있는 오촌 당숙 댁에 피난을 갔다. 당숙 댁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고 도착한 우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리는 온통 물바다였다. 옷을 둥둥 말아 올리고 걷는 사람들 사이로 온갖 것이 떠다녔다.

   삼 많던 물은 어디로 빠져버리고 흙으로 뒤덮인 집안을 닦고 닦아냈다. 물은 정말 무섭다. 자취 없이 쓸어가 버린 마당에 동그마니 살아남은 항아리들이 을씨년스럽다. 깨지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썼을 두껍고 항아리는 후에 교회에 가져다 드렸다.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셨다는 항아리가 있다. 백자에 검초록색 목단꽃이 그려져 있고 대청마루 뒤주 위에 놓여있었다. 항아리 위에 중간 것을 올리고 위에 제일 작은 것을 올려 3개씩 쌍이 있었다. 귀한 것이라 마루 위에 올려다 놓았던 항아리들은 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 후로도 한참 동안 귀함을 받았다. 아직 항아리 개가 장식장에 있다. 항아리 안에는 작은 물건들이 들어있다. 심지어 골프 점수를 쓰는 몽당연필도 있다. 오래된 안경들, 단추, 감기약, 나사, 밴디지들도 있다.

   남편의 유해를 한국에서 Hollywood 모셔왔다. 장의사에서는 유해가 집을 고르라며 뒷쪽방 문을 열었다. 수많은 관들과 항아리들이 나를 소름 돋게 했다. 무섭고 싫었다. 그래도 항아리를 골라야 유해를 보관하고 장례를 치를 있다. 은은한 그린 빛깔, 은색 항아리, 나무로 만든 , 금색으로 번쩍이는 항아리. 온갖 종류의 사진을 찍어 아이들과 상의했다. 은은한 그린을 골랐다

   죽어서 사는 것과 살아서 사는 것이 같은 시간 안에 있다. 내가 가서 만나면 그것이 함께하는 삶이다. 납골당은 때마다 화려해진다. 식구가 늘어나고 꽃이 늘어난다. 많은 사람이 삶의 전부를 항아리에 보관해 둔다. 슬픈, 기쁜, 즐거운, 원망스러운, 짜릿한, 영광스러운, 치사한 모든 순간의 삶들을 가루로 만들어 보관한다. 이웃이 늘어난다. 이젠 그곳이 싫지 않다. 안에 들어서면 평화스럽고 바람조차 온화하게 느껴진다. 이웃들과 친해져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슬프지 않다.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은 하나인 같다.

   성가대가 주최한 음악 세미나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성가 작곡가인 우효원 선생이 세미나의 강사였다. 누구나 부르기 쉽고 좋은 찬양곡을 쓰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곡을 쓰는 시간보다 어떤 곡을 것인가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모든 우주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어떤 소리가 날까? 생각하며 지은 '천지창조' 전곡을 소개했다. 창조 5일째 모든 바다 생물과 물고기와 새를 표현하는 음악은 이제껏 번도 느끼지 못했던 아주 독특한 것이었다. 무대에 옹기 항아리를 준비하여 물을 붓고 안에 바가지를 넣어 두드리기도 하고 치기도 한다. 청량하고 맑은소리로 바닷가와 새들의 소리를 들을 있다. 맨손을 항아리에 넣어 물을 치거나 손가락 사이로 물을 보낸다. 작은 물고기들의 헤엄치고 노니는 소리를 들을 있다. 항아리를 이용한 음향효과가 놀라웠다.

   '모자람을 통해 기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새벽 기도를 통해 얻은 말씀이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항아리의 기적이다.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포도주의 부족함을 예수에게 일러 드리고 예수는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창조한다. 항아리 여섯 개에는 포도주가 가득가득 넘쳤다.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아주 좋은 포도주를 만드셨다. 우리의 부족한 것으로 기적을 베푸시고 우리의 준비를 통해 기적을 창조하신다. 마음을 비우고 가슴에 공간을 마련하고 기적을 기다리며, 기적을 담아낼 항아리를 준비해야겠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17년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