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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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내가 본 여성 행진

2017.08.23 12:38

조형숙 조회 수:200

 1/21/2017(토)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을 처음 보았다. 각자 만든 피켓을 들고 그랜드길 디즈니 홀 앞에서 시작하여 퍼싱 스퀘어를 향해 소리소리 지르며 행진하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거리는 다 차단되고 버스도 택시도 승용차도 꼼작 없이 운행이 불가능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 행진은 계속되고 더러는 길에 앉아 쉬기도 하고 더러는 햄버거를 사서 먹었다. 어떻게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Civic Center 정류장에서 Red Line을 기다렸다. 정거장 안에는 행진을 끝낸 여자들이 가득하고 줄이 아주 길었다. 도착한 전철 안에는 이미 전 정류장에서 타고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어 몇 명이나 더 탈까 싶었다. 벌 떼처럼 문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틈으로 나도 밀려 들어갔다. 중간에 걸린 사람들 때문에 전철 문은 닫히지 않고 계속 띵 띵 소리를 하며 열렸다. 앞에 몇 사람이 빠져 나가주니 그제야 문이 닫히고 전철은 아우성을 무시하고 달려간다. Sorry를 연발하며 서 있는 곳의 자리를 잡아간다. 서는 정류장마다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퉁그러지듯이 빠져나왔다. 드디어 아우성을 피해 시원하고 큰 숨을 쉴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천천히 집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슨 이유로 온 나라가 행진하는지 알기 때문일까?

   인터넷은 그들의 이야기로 바쁘다. "트럼프 취임에 반대하는 운동"이라 했다. 미국의 연예인 유명인들이 거리로 나온 워싱턴 D.C와 L.A는 터질듯하다. 다 여자들이다. 팝의 여왕 마돈나, 만삭인 나탈리 포트먼, 영국 여배우 엠마 왓슨도 함께하고 마이클 무어 영화감독은 워싱턴 포스트지 1면을 찢는 퍼포먼스를 한다.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82)은 내 평생 이토록 민주주의가 분출한 광경을 본 적이 없다면서 시민연대를 놀라워했다. 워싱턴 취임식에 36만8000명이 모였고 시민 연대는 59만7000명이 운집했다. 마돈나는 여성 폭압의 새 시대를 거부한다 했고 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시위대에 힘을 보탰다.

   미국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20일 취임 하자마자 전 세계 여성을 적으로 돌렸다. 피켓에는 "여성 인권도 중요하다.", "트럼프는 퇴진하라"라고 적혀 있다. 힐러리는 "우리가 지지하는 가치를 위해 행진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폐지, 불법 이민자 추방, 미국 우선주의 등 강경 발언으로 위협을 가한다. 대통령 취임식이면 축하를 받아야 하는 데 반대의 소리가 울려 퍼지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미국은 남녀평등이 잘 보장된 여성에게는 최고의 나라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정말 실망했다. 전종준 변호사의 "미국 헌법상 남녀평등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1920년 여성 투표권이 인정되었고 1923년 여성 평등권 수정안이 제안되었으나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다"라는 글을 신문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여성 비하는 용서 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자손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해, 위협당하고 있는 소수자들과 여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인간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거리로 나선 것이다. 성공적인 여성행진이 보여준 열정과 단결력, 에너지가 힘이 되어 모든 국민 누구나가 존중받는 나라 미국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