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8 14:58
구운 두부와 야채로 늦은 점심을 먹고나니 병든 닭처럼 꼬박 꼬박 졸음이 몰려온다. 운동도 할겸 정신도 차릴겸 반스달 공원을 걸었다. 한 바퀴 두 바퀴 돌 때 마다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다. 높이 뻗어 올라간 잘생기고 싱싱한 나무다. 나무는 무릎정도의 높이에 피부가 조금 튀어 나온 것이 도가니뼈를 꼭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 볼 때 마다 도가니탕 생각이 난다.
반대 쪽에는 아주 다른 나무가 있다.껍질이 벗겨져 노리끼리하고 매끄러운 속살이 드러나 있다. 마치 허물 벗는 뱀의 알몸을 보는 것 같다. 아직 벗겨지지 못한 허물의 조각이 바람에 흔들리며 매달려 있다. 손으로 살짝 떼내어주었다.보랏빛 자국을 남기고 떨어진 껍질은 힘없이 바람에 굴러 멀리 가버린다. 나무는 아직 그을리지않은 고운 색의 피부를 간직한채 서있다.
아! 이나무는 껍질을 벗으며 굵어져 가는구나.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를 경험하고 나면 다시 새로운 껍질이 생기고 또 갈라져 바람에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속살이 두꺼워지고 나무는 점점 굵어져 간다.이름도 모르는 나무를 보고 있자니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처럼, 강함과 옥죄임과 부드러움과 자유속에서 생의 나무가 굵어져가고 있다. 함께 떨어지지 못한 나무껍질의 속은 멍든것처럼 잉크색 상처가 남아있다. 상처가 오래 남지 않도록 슬픔은 빨리 떼어내고 잊어야한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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