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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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요즈음은 정보도 많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면 초행 길의 여행도 가능하다. 먼저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지도로 확인 한 후 어느 곳에 비중을 둘 것인가 계획 한다. 볼 거리가 있는 장소, 특별한 음식, 필수적으로 봐야 할 박물관이나 아쿠아리움의 정보를 알아본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여행은 더욱 흥미롭다. 여행사에서 다니는 관광지는 거의 가 본 것 같다. 작은 마을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먹이를 찾아 빙빙 하늘을 나는 솔개 처럼 허락된 시간이 생길 때 기회를 낚아 챈다. 쾌청하면 좋고 비가 오거나 눈 속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컬럼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네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은 경제적인 것보다 만족도가 높은 삶을 추구 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도시는 어떤 곳일까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도시가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깨끗하고 잘 가꾸어져 있다. 깔끔하고 예쁜 그림들과 여성적이며 귀여운 동상들이 곳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거리는 조용하고 자동차는 별로 많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껌 골목이다. Bubblegum Alley라고 불리는 좁은 골목은 1970년 대 초반에 생긴 것으로 50년 가까이의 추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양 쪽 벽은 위에서 부터 바닥 까지 껌이 빈 틈 없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물론 씹던 껌을 붙여 놓은 것이다. 세월을 견디면서 검은 색으로 변한 것 부터 최근에 붙여진 색색의 껌들이 그 위를 덮어 다양한 언덕을 만들고 있다. 씹던 껌은 종이에  싸서 버려야 한다는 질서를 살짝 일탈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특이한 모양도 만들어 놓았다. 메모를 써서 껌으로 붙이기도 했다. 한 때 없애려고 했으나 주민의 반대로 껌의 역사를 이어온 특이한 골목이다. 나도 얼른 껌의 단물을 빼고 두 개의 동그라미를 만들어 붙였다.
 
  고요한 숲과 졸졸 흐르는 물을 벗하고 서 있는 미션을 돌아보고 아빌라 비치(Avila Beach)로 떠났다. 고운 초록 빛 바다 위에 간간히 몇 척의 배를 띄우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 모습을 나타냈다. 내가 보았던 어느 바다 보다도 깨끗하고 맑았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해초들은 손과 발을 좌악 펴고 편안한 안식을 즐기고 있었다. 물 위로 걸어 오던 예수를 만난 바다가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했을까? 두렵고 무서웠던 풍랑을 잠재운 그 바다가 이렇게 아름답게 빛났을까? 
 
  바다로 뻗어 있는 나무 다리 위를 차 타고 들어 갈 수 있어 신기했다. 차를 멈춘 끝에는 다소 넓게 나무로 엮어 만들어진 광장에 기념품 가게와 어시장이 있었다. 어시장에는 싱싱한 생선들이 펄떡 펄떡 뛰고 있다. 그 곳에서는 회를 떠주고, 게도 익혀 주고, 여러 종류의 생선들을 팔기도 했다. 힘차게 움직이며 잡히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싱싱한 게를 집게로 골라 양동이에 담아 쪄달라고 했다. 20분을 기다려 나온 게는 탱탱하고 맛 있었다. 먹는 입과 보는 눈, 냄새가 모두 풍요로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101 South를 타고 피스모 비치(Pismo Beach) 로 향했다. 피스모 비치의 필수 코스인 'Splash Cafe'는 맛 집으로 알려져 있는 크램 차우더(Clam Chowder) 전문점이다. 1989년에 문을 연 이 집은 항상  손님이 넘쳐나고,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하다. 바닷가에서 육지 쪽으로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간판과 벽화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처마 밑 그늘에 얼굴만 가린 채 30분을 기다렸다. 주문을 하자 브레드 보울 (Bread Bowl)에 담긴 크램 차우더가 나왔다. 크게 만든 빵의 윗 부분을 잘라 뚜껑을 만들고 안을 동그랗게 파낸 후 그 안에 슾을 가득 담았다. 한 스푼 떠 먹으니 맛있다. 30년을 이어온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먼저 온 사람이 일어 나기를 기다려 다음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문 밖에는 여전히 긴 줄이 먹기를 기다리고 있다.
 
   떠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미지의 땅은 늘 호기심을 불러 온다. 새로운 장소, 감성, 음식은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시간 되면 떠나는 여행은 예측 할 수 없는 묘미를 준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배우게 된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 있는 나를 돌아 보게 된다. 여행은 걸으며 보는 책이고, 독서는 앉아서 가는 여행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기억에 남는 평화로운 순간으로 얼마 동안은 삶을 지탱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디론가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떠날 시간을 기대 하며 오늘도 행복한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