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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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어머니

2018.04.29 13:32

조형숙 조회 수:7756

    내 나이 스무살 되던 해 6월, 그 날의 태양은 참 뜨거웠다엄마와 이별하기 위해 양지 바른 언덕 길을 힘을 다해 올라 갔다. 얼굴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은 턱에 차 올랐다. 하얀 광목으로 치마 저고리를 입고 긴 머리는 뒤로 묶었다오른쪽 다리에는 허벅지까지 깁스를 하고, 양쪽 겨드랑이는 크러치를 의지한 채 높은 언덕에 마련한 매장지를 향해 올라갔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엄마가 불쌍해서 울고서러워서 울고미안해서 울고철이 없어 나도 함께 묻어 달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내 눈은 작은 산처럼 부어 올랐. 나는 정말 엄마 누우신 그 곳에 함께 들어가고 싶었다.

 

그 해 정월 초하루, 친구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불렀는데 엄마는 “여자가 정초 부터 나다니는 것 아니다. 다음 날 가라”고 말씀하셨다. 스케이트는 엄마가 늘 누워계시는 안방의 다락 안에 있어 꺼낼 수가 없었다. 친구의 롱 스케이트를 빌려 타다가 사고가 생겼. 피규어 스케이트만 탔기 때문에 롱 스케이트에 익숙하지 않았다. 얼음이 조금 녹아 있던 곳에 스케이트 날이 박히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정신을 잃었다. 오른쪽 다리 종아리 뼈가 부러졌다. 멀쩡하게 나간 딸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들어온 것을 보신 엄마가 얼마나 놀라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함에 가슴이 아리다. 


부러진 종아리에 깁스를 하고 지낸 지 두 달이 넘어도 일어 서지 못했다. 해군병원 외과 과장이던 사촌 형부가 서울 출장 왔다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자 했다. 뼈는 날카롭게 사선으로 부러져 있었고 살이 그 사이를 들어가 자라고 있었다. 깁스를 떼내도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백차가 실어다 준 병원에서 촬영도 하지 않고 그냥 깁스만 해 주었던 결과였다. 경부선을 타고 삼랑진에서 내려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 탔다. 진해 해군 병원에서 형부가 수술을 해 주셨다. 진해는 군항제로 많은 사람들이 꽃 구경에 한창이던 때였다. 5월에 서울로 돌아 왔고 6월에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 말씀에 순종 하지 않았던 그 일이 평생 동안 후회로 남아 있다.

 

   내가 6학년 때 부터 병석을 떠나지 못했던 엄마는 큰 병원을 안 간데 없이 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회복이 어려웠다.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로 돼지 족을 삶아 먹었는데 체기가 있었고 병이 커져 만성 신장염이 되었다.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누워 계신 요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친구들 이야기를 해드리면  "그랬구나" 하며 환한 미소로  들어 주셨다. 누우신 요 밑에는 헌금 봉투가 늘 준비되어 있었고 심방 오시는 분께 전달을 부탁 했다.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를 하셨고 엄마는 성가대원들을 자주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했다. 어린 우리를 귀여워 해 주는 대원들이 너무 좋았다. 엄마가 아파도 우리 6남매는 어려움을 모르고 지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를 부르며 들어가니 방이 휑하다. 엄마가 안계신다. "엄마 어디 갔어 아주머니?" 일하는 아주머니는 엄마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서 집에 못 오신다 했다. "또 병원에 갔어? 그럼 언제 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어린 동생들이 들어와 "엄마 보고 싶어" 하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엎드려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일어나 서로 쳐다 보다가 또 울기를  해 질 때 까지 했다.

   의술로도 낫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안수기도를 받았다. 엄마는 간절히 기도하면 건강을 되찾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삼각산 기도원으로 올라 갔다. 아주머니가 반찬을 준비해 산으로 가는 날은 나도 따라 나섰다. 허술한 컨테이너 같은 집이었지만 깨끗했고 안에는 각자의 자리를 방석과 이불등으로 구별해 놓았다. 기도 소리는 크고, 울기도 하는 것이 어린 내게는 아주 두렵고 싫었다. 기도원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 많은 들 꽃이 나를 기쁘게 했다.
  
   즐겨 부르시던 "고통에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 찬송대로 엄마는 모든 고통 다 벗고 평화로운 곳으로 가셨다. 매년 어머니날이 되면 그리움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어머니! 그리운 나의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