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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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상상

2018.07.26 15:01

조형숙 조회 수:8154

    미주 문학의 가을호에는 '상상'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보내달라는 공고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상상의 여행을 즐기고 상상의 연주를 듣고 싶었다. 가보고 싶었던 노르웨이의 그리이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겨울왕국'의 배경이 되었던 노르웨 이 제 2의 도시 베르겐이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원래 나무로만 지어진 건물들은 몇 차례의 큰 화재로  소실 되었으나 옛 모습을 설계도대로 재현해 놓았다. 지금은 예쁜 건물 안에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볼거리가 많지만 다 제치고 걸음을 재촉하여 그리이그가 살았던 트롤하우젠으로 간다. 집 앞에는 콧수염에 인상 좋은 그리이그의 동상이 서있다. 3층으로 된 아담한 집안에는 다양한 사진들과 그림이 온 벽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포즈인 팔장을 낀 사진이 제일 앞에서 웃고 있다. 그리이그의 부인 니나의 사진이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다. 결혼 25주년의 축하 파티도 이 집에서 하지 않았을까? 생가 옆에는 세계 어느 바다보다 푸르고 잔잔한 호수가 있다. 호수 가까이에 그의 자그마한 작업실이 진한 자주색의 옷을 입고 서있다. 그는 호수를 바라보며 작곡하기를 좋아했다. 죽어서도 호수를 보기 원했다는 그리이그 부부는 호수가 바라보이는 암벽에 나란히 누워있다. 
 
   대청문을 열면 호수와 작업실이 내다 보이는 트롤하우젠(Troldhaugen)에서는 늘 미니 콘서트가 열린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마루에 빙 둘러 앉아 연주를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한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솔베이지송을 연주한다. 마음에 기쁨의 구름이 차오른다. 아름답게 건반위에 맺히는 방울 방울 이슬과 가랑비처럼 흩어져 내리는 강인함으로 조화를 이루어 슬프고 가슴 에이게 한다. 호숫가의 이름 모를 풀꽃처럼 외로운 둣 하다가 오월의 장미처럼 활짝 웃기도 한다. 마루 중앙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와, 그 너머로 보이는 작업실과, 파아란 호수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
 
   그리이그(1843년 6월15일 베르겐 출생)는 노르웨이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그는 작품속에 민족음악의 선율과 리듬으로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썼다. 그는 입센의 작품을 바탕으로 <페르퀸트>라는 음악을 작곡한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페르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로 어머니의 절실한 집안 재건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공상에만 빠져 있다가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을 하여 큰 돈을 벌고 ,여자에게 배신도 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리기도 하나 결국 고향이 그리워 그 동안 번 재물을 배에 가득 싣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하여 무일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 온다. 거지꼴로 산 속 오두막을 찾았을 때 그 곳에는 이미 백발이 된 솔베이지가 뜨개질을 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다. 늙고 지친 페르는 솔베이지의 무릎을 베고, 자장가를 들으며 그녀의 팔에 안겨 죽는다.
 
    어린 시절 듣던 가슴아린 슬픈 멜로디를 기억한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뒤에 따라오는 아아아아 아아의 멜로디는 어린 가슴을 더욱 슬프게 했었다. 신의 축복으로 페르의 품에 안기기를 기도했던 솔베이지의 애절함이 노래속에 묻어난다.
  
    행여 당신 왔다가 그냥 갈까 창문마저 닫지 못하고 안타까운 잠이 들던 나날들이었을테다. 함께 했던 그 바닷가에서, 같이 올랐던 산 줄기에서, 비내리던 새벽의 단풍길에서 손 흔들며 오는 그를 향해 허공을 저으며 놀라 일어나 두리번 거리던 시간 속에 애간장이 다 녹았던 솔베이지를 생각하며 기다림의 절절함에 빠진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리는 조용한 시간속에 편안한 숨을 쉬며, 얼굴에는 광채가 있는 그 아픈 아름다움을 배운다.
그리이그의 삶을 통하여 드러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창조자의 거대한 신비로움을 바라본다. 어떻게 나무는 초록을 자랑하며 바다는 푸른 빛으로 조화를 이루어 내는가? 왜 산은 위로 솟아 오르며 자기 몸에 갈색의 나무줄기와 초록의 잎과 다양한 색깔의 꽃으로 옷을 입히는가? 솔베이지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것을 보며 느끼는 감사함으로 기다림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날이 너무 덥다. 한 여름밤의 상상은 슬프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18년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