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3 16:27
국수 한 그릇 - 이만구(李滿九)
사는 것이 무언지, 그저 반겨주는 오늘
잠에서 깨어 거울 앞에 서 살펴보니
모습 추레하고 입맛도 예전 같지 않아
이럴 수 있는 가을 타는 하루라 생각했지
고국의 맛 짜파게티 끓여 먹던 주말
아내와 점심 나가하자니 혼자 가라 한다
재킷 걸치고, 집 근처 월남국숫집 가서
국수 한 사발 먹고 값 지불하려 하니
앞선 백인이 먼저 지불하고 갔다는 말
문밖, 그 사람은 벌써 떠나 찾을 수 없다
아주 모르는 사람이 베푼 국수 한 그릇
내가 무엇이 그리 측은해 보였을까
절실히 도움 필요로 하는 사람 찾아
오른손은 왼손 모르게 보시하는 건데
난 멋으로 빛바랜 오래된 모자 쓰고
단지, 산다는 것 잠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럴만한 이유 없는 날 왜 자선했을까
아무튼, 한 시절 살면서 살맛 나는 세상
가을 속 낙엽 지는 가로수길 걸으며
벽에 걸린 성체 액자 자꾸 눈앞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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