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3 19:31
윤사월 붉은 봄꽃이 - 이만구(李滿九)
내 이름도 더 알려하지 마시라
검게 탄 얼굴 무어라 내세울 것 없는 나목이
높다란 가지 끝에 당당히
벌거벗은 몸에 붉은 꽃만 피었다
혼자서 이 한적한 거리 서성일 때
하도 봄하늘이 푸르러
망설이는 눈길, 저 맑은 하늘가
윤사월 꽃가루 흩날리나
닭 볏 만한 꽃술 빈 가지에 매달려있다
남은 세월 그리 멀지 않다고
하늘 우러러 먼저 핀 이국의 가로수 꽃
그 누가 나무랄지라도
왜 이 세상 이 자리에 서 있냐고
나는 결코 네 이름 다시 묻지 않겠다
세상에는 이름 없는 나무도 있고
미지의 꽃처럼 남몰래 사라져 간 사람들...
죽은 이 영혼 위로하는 듯
하얀 정오의 거리에서
세월의 허무한 마음 스치고 갔을까
비 내린 후, 사월의 청명한 하늘에
검은 가지에 피어 난 붉은 꽃
한 시절 저 생명의 절정을 보며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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