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30
어제:
274
전체:
5,025,176

이달의 작가
2008.05.26 03:30

청맹과니

조회 수 276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청맹과니



                                                                 이 월란



사지멀쩡하게 태어난 날
두 눈은 쉴새 없이 초점을 맞추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전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지
처음엔 기가막혀
어릴 때 숨바꼭질 하듯 장롱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고도 싶었는데
이젠 정상인처럼 눈을 깜빡이는 법도
소리를 따라 굼뜬 시선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도
육감의 지팡이로 살얼음 낀 땅을 비껴가는 법도
어렴풋이 익혀가는 요즈음
이젠 헛손질도 숨쉬기만큼이나 만성이 되었지
짐작컨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앞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어림재기로 알 것도 같아
서로의 덧막대기들이 흔들리다 부딪치기 일쑤였고
엉켜 넘어지고, 넘어뜨리는 장님들의 세상인거야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같은 세상을 더듬어
지난 밤 암흑 속에 슬쩍 지나간 꿈 얘기로 이판사판 다투었고
서로를 볼 수 없음에도 서로 더 잘낫다고 골목마다
사생결단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았지
한번씩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어지럽게 휘적이며 부딪쳐오던 지팡이가 땡그렁 떨어지면
짐승의 사체같은 묵직한 물체가 발길에 차였었지
오늘도 난 나의 덧막대기가 어디 부러지진 않았는지
매끄럽게 닦아 놓고 기다려
땅을 짚어내지 못하면 난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2008-05-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월란 2008.05.10 341
164 사실과 진실의 간극 이월란 2008.05.10 322
163 미라 (mirra) 이월란 2008.05.10 293
162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월란 2008.05.10 499
161 그대여 이월란 2008.05.10 510
160 세월도 때론 이월란 2008.05.10 295
159 파도 2 이월란 2008.05.10 238
158 어떤 하루 이월란 2008.05.10 293
157 철새는 날아가고 이월란 2008.05.10 275
156 운명에게 이월란 2008.05.10 289
155 서로의 가슴에 머문다는 것은 이월란 2008.05.10 323
154 꽃그늘 이월란 2008.05.10 256
153 가을이 오면 이월란 2008.05.10 255
152 기다림에 대하여 이월란 2008.05.10 282
151 너에게 갇혀서 이월란 2008.05.10 323
150 붉어져가는 기억들 이월란 2008.05.10 294
149 행복한 무기수 이월란 2008.05.10 287
148 별리(別離) 이월란 2008.05.10 417
147 별 2 이월란 2008.05.10 267
146 가시목 이월란 2008.05.10 385
Board Pagination Prev 1 ...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