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4
어제:
379
전체:
5,021,367

이달의 작가
2008.05.26 03:30

청맹과니

조회 수 276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청맹과니



                                                                 이 월란



사지멀쩡하게 태어난 날
두 눈은 쉴새 없이 초점을 맞추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전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지
처음엔 기가막혀
어릴 때 숨바꼭질 하듯 장롱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고도 싶었는데
이젠 정상인처럼 눈을 깜빡이는 법도
소리를 따라 굼뜬 시선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도
육감의 지팡이로 살얼음 낀 땅을 비껴가는 법도
어렴풋이 익혀가는 요즈음
이젠 헛손질도 숨쉬기만큼이나 만성이 되었지
짐작컨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앞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어림재기로 알 것도 같아
서로의 덧막대기들이 흔들리다 부딪치기 일쑤였고
엉켜 넘어지고, 넘어뜨리는 장님들의 세상인거야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같은 세상을 더듬어
지난 밤 암흑 속에 슬쩍 지나간 꿈 얘기로 이판사판 다투었고
서로를 볼 수 없음에도 서로 더 잘낫다고 골목마다
사생결단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았지
한번씩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어지럽게 휘적이며 부딪쳐오던 지팡이가 땡그렁 떨어지면
짐승의 사체같은 묵직한 물체가 발길에 차였었지
오늘도 난 나의 덧막대기가 어디 부러지진 않았는지
매끄럽게 닦아 놓고 기다려
땅을 짚어내지 못하면 난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2008-05-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85 빛꽃 이월란 2009.08.01 274
784 폭풍 모라꼿 이월란 2009.08.06 274
783 그냥 두세요 이월란 2008.05.09 275
782 철새는 날아가고 이월란 2008.05.10 275
781 바람의 교주 이월란 2009.10.24 275
780 지금 이대로 이월란 2012.04.10 275
» 청맹과니 이월란 2008.05.26 276
778 날개 달린 수저 이월란 2008.05.09 276
777 가을주정(酒酊) 이월란 2008.05.10 276
776 겨울새 이월란 2008.05.10 276
775 연인 이월란 2009.05.12 276
774 흔들리는 물동이 이월란 2008.05.09 277
773 고통에 대한 단상 이월란 2008.05.10 277
772 데자뷰 (dejavu) 이월란 2008.05.10 277
771 비의 목소리 이월란 2008.06.11 277
770 세상을 끌고 가는 차 이월란 2008.10.16 277
769 詩 5 이월란 2009.12.15 277
768 노스탤지어의 창 이월란 2008.05.10 278
767 손님 이월란 2008.12.19 278
766 흐르는 섬 이월란 2009.01.15 278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