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48
어제:
338
전체:
5,022,037

이달의 작가
2008.05.10 12:45

저녁별

조회 수 253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녁별


                                                                                                                   이 월란
                                                                                                                                                  


찬연한 어둠의 무대가 차려지기도 전, 대본을 잃어버린 빙충맞은 신인배우처럼 허둥지둥 나와버렸다.
왜 태어났을까. 아직 어둠을 모르는데. 왜 생겨났을까. 저리 서투른 외눈박이 눈빛으로. 절망으로 빚은
삶의 좌판 위에 카스트로 목이 졸린 데칸고원의 달릿*같은 가녀린 목숨으로.


생리 중의 도벽같은 습관성 우울이 싸늘히 옆에 뜨고. 어둠의 정교한 끌로 세공되지 못한 저 어슴푸릇
한 조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의 가녘으로 밀려난 내 잊혀진 사랑으로. 그 땐 내 작은 우주
를 다 비추고도, 아니 태우고도 남았을 단 하나의 기억으로.


나의 시를 죽을 때까지 읽게 해 달라던, 나의 시어들을 따라 움직일 얼굴 없는 독자의 숨겨진 눈빛처럼.
마음을 구걸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겸허히도 떠 있다. 하늘의 오선지 위에 엇박자로 잘린
싱커페이션같은 음보 하나. 실낱같이 잦아드는 한숨도 위태한 저 혈연같은 여윈 빛에 잇대어 보면. 왜
태어났을까. 이 환한 저녁에.

                                                                                                                         2008-03-25





* 달릿(Dalit) : 산스크리트어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으로 신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상위 카스트를
                    섬기는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을 가리킨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 사내아이들 이월란 2008.09.18 255
144 진실게임 2 이월란 2008.05.10 254
143 똥개시인 이월란 2009.04.07 254
142 떠 보기 이월란 2011.12.14 254
141 단풍 이월란 2008.05.10 253
140 페치가의 계절 이월란 2008.05.10 253
139 사랑은 이월란 2008.05.10 253
» 저녁별 이월란 2008.05.10 253
137 분수(分水) 이월란 2008.05.10 253
136 라일라* 이월란 2008.12.19 253
135 고스트 이월란 2009.02.14 253
134 뜨거운 기억 이월란 2009.03.21 253
133 첫눈 2 이월란 2008.11.17 252
132 먼지 이월란 2008.05.10 251
131 오늘은, 삶이 이월란 2009.04.07 251
130 평생 이월란 2012.05.19 251
129 상사 (相思) 이월란 2008.05.10 250
128 그리고 또 여름 이월란 2008.07.02 250
127 투명한 거짓말 이월란 2008.10.11 250
126 그림자숲 이월란 2009.04.05 250
Board Pagination Prev 1 ...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