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51
어제:
276
전체:
5,025,473

이달의 작가
2008.05.27 12:24

격자무늬 선반

조회 수 341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격자무늬 선반



                                                                        이 월란



참으로 오랜만에, 손님을 치르느라 대청소를 했고 온종일 요리도 했다
집안은 반들반들 살아났고 냉장고엔 남은 음식들이 그득했다
손님들이 우루루 떠나가고 차고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모두 선반으로 꽉 차 있다
집안은 살아났는데 차고는 아직 죽어 있다
아이스박스, 빈박스, 물통, 카셑라디오, 신발, 청소도구, 각종 연장들......
혹시나 필요해질까, 버리지 못하고 쌓여진 것들이 더 많다
비어 있어야 할 것들이 묘한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사방이 선반으로 꽉 찬 내 안에 고인 잔상들의 청사진이다
부정한 길들의 도면이 내장되어 있고
험란한 회로엔 영원히 불이 들어오지 않을 듯 소등 상태이다
때론 경이로웠던, 영원히 발굴되지 않을 무덤 속의 벽화처럼


분분했던 열탕 속 심정들이 무반주로 앉아 있고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된 시간들이 누추한 호흡을 감당해내고 있다
저것들이 언제 다 필요할 것이라고
슬픈 눈 하나씩 달고 외눈박이 기다림을 지워내고 있다


기다림은 늘 그랬다
까치발 디딘 선반 위에 호명되지 못할 천성이 먼지로 분칠을 하고
엎드려 있을지라도 내 기억의 통로는 함몰된지 오래다
지독한 미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꼭대기 층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시간 아래
격자무늬 시렁 하나 또 못이 쾅쾅 박히고
한뎃바람에 먼지만 삼킬 상한 꿈 하나 또 얹어 놓고야 만다


                                                                 2008-05-2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5 3293 이월란 2012.08.17 345
544 하얀 침묵 이월란 2008.05.08 344
543 실비아, 살아있는 이월란 2010.01.04 344
542 미몽(迷夢) 이월란 2008.05.10 343
541 걸어오는 사진 이월란 2009.01.13 342
540 악습 이월란 2008.05.09 341
539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월란 2008.05.10 341
» 격자무늬 선반 이월란 2008.05.27 341
537 풍경이 건져 올리는 기억의 그물 이월란 2008.05.10 340
536 나의 로미오 이월란 2009.06.10 340
535 가을 혁명 이월란 2009.09.23 340
534 혼돈의 꽃 이월란 2011.05.10 340
533 단지, 어제로부터 이월란 2011.05.31 340
532 빛나는 감옥 이월란 2009.05.19 339
531 가변 방정식 이월란 2009.12.20 339
530 새 3 이월란 2010.01.11 339
529 눈길 이월란 2008.05.08 338
528 꽃이 될래요 이월란 2008.05.09 338
527 물 위에 뜬 잠 2 이월란 2008.05.10 338
526 둥둥 북소리 이월란 2008.06.08 338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