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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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27 12:24

격자무늬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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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무늬 선반



                                                                        이 월란



참으로 오랜만에, 손님을 치르느라 대청소를 했고 온종일 요리도 했다
집안은 반들반들 살아났고 냉장고엔 남은 음식들이 그득했다
손님들이 우루루 떠나가고 차고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모두 선반으로 꽉 차 있다
집안은 살아났는데 차고는 아직 죽어 있다
아이스박스, 빈박스, 물통, 카셑라디오, 신발, 청소도구, 각종 연장들......
혹시나 필요해질까, 버리지 못하고 쌓여진 것들이 더 많다
비어 있어야 할 것들이 묘한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사방이 선반으로 꽉 찬 내 안에 고인 잔상들의 청사진이다
부정한 길들의 도면이 내장되어 있고
험란한 회로엔 영원히 불이 들어오지 않을 듯 소등 상태이다
때론 경이로웠던, 영원히 발굴되지 않을 무덤 속의 벽화처럼


분분했던 열탕 속 심정들이 무반주로 앉아 있고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된 시간들이 누추한 호흡을 감당해내고 있다
저것들이 언제 다 필요할 것이라고
슬픈 눈 하나씩 달고 외눈박이 기다림을 지워내고 있다


기다림은 늘 그랬다
까치발 디딘 선반 위에 호명되지 못할 천성이 먼지로 분칠을 하고
엎드려 있을지라도 내 기억의 통로는 함몰된지 오래다
지독한 미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꼭대기 층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시간 아래
격자무늬 시렁 하나 또 못이 쾅쾅 박히고
한뎃바람에 먼지만 삼킬 상한 꿈 하나 또 얹어 놓고야 만다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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