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바이러스

by 이월란 posted Nov 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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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 바이러스



                                                                                      이월란



전갈의 독소를 닮은 그 세균은 사실, 매일 퍼지고 있었다
허리 휘어진 가지 위에서
줄도산 하는 이 가을, 병목들 사이에서


어쩌면 속눈썹 보다도 가벼운
어쩌면 며칠 야근을 한 눈꺼풀 보다도 무거운 목숨은
피지도 지지도 않는 저 온실 속 조화처럼 미끈한
플라스틱 꽃대궁을 닮은 것이 아니었다
생의 음모를 파헤치는 빛의 수령들 앞에 머릴 조아리고 또 조아려
비틀린 야생의 줄기처럼 까실한 침엽을 닮아가는 거였다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비밀 하나 있었다면
그녀는 바로 지금, 그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비밀 속에 머릴 풀어헤치고 자폭하게 될지언정


그녀는 450일, 열손가락보다 더 절친했던 연장들을 내팽개치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파도를 삼킨 검푸른 리워야단*은 애완견의 눈빛으로
우리들 곁에서 사육당하고 있다
추격전은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금 밟으면 쫓겨나는 열전의 유막
그녀가 열고 나간 뒷문 발치엔 그녀의 모가지까지 차오르는 푸른 강이
흐르고 있을 터였고 방수복은 올이 풀리기 시작했다
물 속엔 식용가능한 산소가 자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린 잊고 산다


사실 난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도 있다
다가올 추수감사절 식탁 앞에선 글썽렌즈를 낀 눈으로도
싸구려 햄 위에 그레이비를 얹듯 감사기도를 얹어서 먹으리란 사실을


출근시간마다 뇌성마비의 아침으로도 온전한 하루를 연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료가 떨어진 자동차처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주차위반 딱지가 붙지 않는
질탕하게도 선한 자유를 보듬어 안아도 봐야 할 것이란 사실을


장조에서 단조로 변주되는 시점
NG를 내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삼류배우가 되었다
감염된 전신의 참회를 저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면역이 된 뒷문은 바같으로 향한 손잡이가 없는 여닫이 문이었다)
                                                      

                                                                               2008-11-04




* 리워야단 :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에 맞섰다가 정복당한 세력들의 상징적인 화신으로
성경에선 태초의 바다와 함께 머리가 여럿인 바다괴물(용)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