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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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詩가 혐오스럽다



                                                                                     이월란



쇼윈도 안의 파산을 아랑곳 하지 않는 벌거벗은 마네킹을 닮아간다
계절이 바뀌기도 전, 행인들의 시선을 낚아채기 위해 경망히 봄, 가을을 뛰어넘는
염천과 혹한의 시리고도 뜨거운 것이었다


다말을 범한 암논*의 혐오증을 닮아간다
배설인 줄 알았던거다, 고해인 줄 알았던거다, 천만의 말씀,
또 하나의 욕념을 향한 섭취였다, 이기적인 편식의 장기 하나 서둘러 설치해 둔거였다


흡혈귀처럼 같은 밤을 갈라먹고도 각자의 눈빛으로 해뜨는 아침
밤새 뜯어먹은 붉은 살점이 어느새 새벽빛 새살로 숨쉬고 있었다
내가 삼킨건 대체 무엇이었나, 가시관을 둘러메고 총총히 다가오는 안갯빛 반사상


교정조차 채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저장해 버리는 습관은
클릭 한 번으로 삭제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게워낸 것들을 다시 쓸어담아 혀끝에 대어보아야 하는 남사스런 그 혐오감이었다


자판마다 생손 앓는 독소들이 보수 없는 아름다운 노역을 자처했다
노망든 계모의 얼굴같은 희멀끔한 백지
행간마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젊은 애인아, 늙어가는 숲으로라도 가자
거웃 속에 핀 망령의 꽃처럼이라도 웃어보렴


그리움의 독이 얼어붙은 저 이른겨울의 눈밭에서라도
후생의 업으로라도 피어 바람에 흔들려보자
굿을 빼자


되새김질 하는 순한 소의, 어둠 삭인 저수지같은 눈망울을 닮아야 한단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헤아려 보는 노수의 손가락으로라도
동전만 짤랑이는 주머니 속을 휑하니 뒤집어 헤아려보는
노숙의 눈빛으로라도


밀폐된 용기 속에 갇힌 물고기 한 마리
바다가 자라지 못하는 바닥을 뛰어다니며 팔딱이고 있다
여지껏 숨을 쉬고 있다

                                                                                    2008-11-06




* 다윗왕의 장남인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을 강간하였고 그 후 혐오하게 된,
탐욕과 위선의 이중인격자이며 쾌락과 욕정의 노예가 된 인간 본연의 얼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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