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1
어제:
338
전체:
5,022,050

이달의 작가
조회 수 390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이월란




어둠의 백지 위에 열 수지(手指)빛으로 진하게, 경망히 솟은 구릉마다 밑줄 없이, 조악히 패인 골마다 신중히, 약간 기울어진 흘림체로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저장되지 못하는 파지같은 내 몸에 詩를 쓴다. 가끔 파일에 써 놓은 나의 詩가 번역되기도 한다. 수면(睡眠)으로 이어진 아득한 길 따라 용서 못할 것이 없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을, 순간의 절박함이 차렵이불 끝자락을 붙들고 숨이 끊어진다. 각진 삶의 모서리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데, 세상이 듣기 전에 서로의 입 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 현실의 까칠한 살갗도 꿈처럼, 기억처럼 어루만져야 한다. 우리, 살아온 세월만큼의 숨가쁜 기다림 뒤에 오는 것이, 버린 詩語처럼 비릿한 슬픔으로 녹아내린, 씨물 속에 핀 허무의 꽃 뿐이라 할지라도. 얼룩진 배암같은 서체를 휘감고 다니다 바람따라 지워지면 당신, 처음인 듯 다시 써야 하리. 아침이면 받침 잃은 활자들이 떠도는 미뢰의 꽃방. 詩는 늘 하이빔같은 햇살 아래 알몸처럼 부끄럽다.

                                                                                                              2008-11-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25 푸코의 말 이월란 2008.05.14 318
724 물처럼 고인 시간 이월란 2008.05.16 258
723 詩똥 2 이월란 2008.05.16 279
722 죄짐바리 이월란 2008.05.17 290
721 바람을 낳은 여자 이월란 2008.05.18 298
720 낙조(落照) 이월란 2008.05.20 272
719 청맹과니 이월란 2008.05.26 276
718 격자무늬 선반 이월란 2008.05.27 341
717 부음(訃音) 미팅 이월란 2008.05.28 293
716 비섬 이월란 2008.05.30 283
715 홈리스 (homeless) 이월란 2008.05.31 268
714 당신, 꽃이 피네 이월란 2008.06.04 270
713 그리움 이월란 2008.06.05 231
712 꽃, 살아있음 이월란 2008.06.07 235
711 둥둥 북소리 이월란 2008.06.08 338
710 핏줄 이월란 2008.06.10 242
709 주머니 속의 죽음 이월란 2008.06.10 335
708 비의 목소리 이월란 2008.06.11 277
707 수신확인 이월란 2008.06.15 205
706 P.T.O. 이월란 2008.06.19 211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