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20
어제:
306
전체:
5,022,933

이달의 작가
조회 수 390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이월란




어둠의 백지 위에 열 수지(手指)빛으로 진하게, 경망히 솟은 구릉마다 밑줄 없이, 조악히 패인 골마다 신중히, 약간 기울어진 흘림체로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저장되지 못하는 파지같은 내 몸에 詩를 쓴다. 가끔 파일에 써 놓은 나의 詩가 번역되기도 한다. 수면(睡眠)으로 이어진 아득한 길 따라 용서 못할 것이 없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을, 순간의 절박함이 차렵이불 끝자락을 붙들고 숨이 끊어진다. 각진 삶의 모서리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데, 세상이 듣기 전에 서로의 입 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 현실의 까칠한 살갗도 꿈처럼, 기억처럼 어루만져야 한다. 우리, 살아온 세월만큼의 숨가쁜 기다림 뒤에 오는 것이, 버린 詩語처럼 비릿한 슬픔으로 녹아내린, 씨물 속에 핀 허무의 꽃 뿐이라 할지라도. 얼룩진 배암같은 서체를 휘감고 다니다 바람따라 지워지면 당신, 처음인 듯 다시 써야 하리. 아침이면 받침 잃은 활자들이 떠도는 미뢰의 꽃방. 詩는 늘 하이빔같은 햇살 아래 알몸처럼 부끄럽다.

                                                                                                              2008-11-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25 금단(禁斷) 이월란 2010.04.18 416
724 내게 당신이 왔을 때 이월란 2010.04.18 434
723 누드展 이월란 2010.04.18 476
722 예감 이월란 2010.04.18 424
721 나의 통곡은 이월란 2010.04.18 516
720 바벨피쉬 이월란 2010.04.13 495
719 평론의 횟감 이월란 2010.04.13 399
718 가벼워지기 이월란 2010.04.13 406
717 나와 사랑에 빠지기 이월란 2010.04.13 435
716 비온 뒤 이월란 2010.04.13 491
715 기다림 2 이월란 2010.04.13 356
714 봄눈 2 이월란 2010.04.05 430
713 이월란 2010.04.05 449
712 물받이 이월란 2010.04.05 534
711 딸기방귀 이월란 2010.04.05 455
710 詩의 벽 이월란 2010.04.05 407
709 늙어가기 이월란 2010.04.05 400
708 봄눈 1 이월란 2010.04.05 448
707 The Tide 이월란 2010.04.05 405
706 그대 없이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이월란 2010.03.30 722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