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47
어제:
306
전체:
5,023,060

이달의 작가
2009.11.16 13:23

가을 죽이기

조회 수 315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을 죽이기



이월란(09/11/12)



사랑을 잃어도 좋을 계절


가을만큼 가식 없는 계절이 없다
가을만큼 적나라한 계절이 없다
가을만큼 솔직한 계절이 없다


버리고 죽어가는 것들이 낱낱이 발각되는 계절
죽은 가을의 시체들은 썩는 냄새조차 순하다
늙어가는 세월의 앙상한 팔들


이토록 참혹한 가을보다
화사한 봄과 함께 동반자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니
소생하는 생명과 밝은 봄빛에 더 절망하는 사람들
가을은 자연으로부터 위로 받는 계절임에
하늘도 저리 높은 것이겠다


폐허가 되어도 슬프지 않은 계절
이 스산한 가을저녁 대신
어느 누가 더 적막해질 수 있을까


두 발로
혼자 서고, 혼자 걸어가고,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우린 모두 가을에 태어난 천진한 아기들


가을엔 역시 포옹하는 연인보다
헤어지는 뒷모습이 어울린다
내내 충혈되어 있는 가을의 두 눈 속에
설법처럼 내리는 죽은 잎들의 증언


딱딱한 껍질을 벗고
폐허의 축제로 나오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가을의 전령이 되지 않을 수 없겠다


우리가 당도해야 할 가을의 끝에는
언제나 Dead End 라고 새겨진 팻말이 있어
날숨마다 성에꽃을 피우는 가을의 끝에는
다 잊고 돌아나올 수 있는 망각의 눈이 내리고


하얀 지우개밥처럼 내려 쌓이는 망각의 눈
흉흉하게도 우릴 지탱해주기 위해 붉은 심장 위로
잊을 때까지 내리고 또 내리고


우편함 속엔 매일 그가 보낸 낙엽편지
활자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눈길 닿는 풍경마다 그가 보낸 사연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85 횟집 어항 속에서 이월란 2008.10.07 570
984 내 안에 있는 바다 이월란 2008.05.07 569
983 섬그늘 이월란 2010.09.26 566
982 니그로 이월란 2010.09.26 565
981 그대가 오는 길 이월란 2010.11.24 565
980 흔들의자 이월란 2008.05.08 559
979 살 빠지는 그림 이월란 2012.02.05 559
978 동문서답 이월란 2010.10.29 558
977 천국, 한 조각 이월란 2010.09.20 557
976 꿈속의 꿈 이월란 2012.04.10 555
975 상사병 이월란 2008.05.07 553
974 손밥 이월란 2010.05.30 550
973 부모 이월란 2010.09.20 546
972 흰긴수염고래 이월란 2010.01.04 545
971 머리로 생리하는 여자 이월란 2010.01.07 545
970 물 긷는 사람 이월란 2008.05.08 544
969 고문(拷問) 이월란 2008.05.08 539
968 금단의 열매 이월란 2014.06.14 538
967 토끼와 거북이 이월란 2010.06.12 535
966 아가페 미용실 이월란 2009.08.13 53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