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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12.15 11:53

코끼리를 사랑한 장님

조회 수 334 추천 수 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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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사랑한 장님



이월란(09/12/15)



이 거대한 암호는 뭔가요 만지는 손끝마다 비밀의 문이 열려요 검은 안경을 쓰고 안마쟁이 노릇을 하고 있네요 개천도 나무라고 자팡이도 분질러 보았죠 나는 등불 앞에서도 캄캄한 눈이에요 코끼리를 본 적이나 있었을까요 점자책 속에서도 손가락이 읽어내었을까요 인도코끼리인가요 아프리카코끼리인가요 코끝에서 발등 위에서 엉덩짝 위에서 오늘도 헤매고 있네요 한 번씩 괴물이 발을 구를 때마다 지진이 나네요 이 괴물에게 올라타면 당신에게로 갈 수 있을까요 더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가 빽빽한 원시림 속에서 길을 잃고 말까요 눈을 대신하는 후각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면 주름이 생글 웃기도 하네요 내가 그려 놓은 스케치북으로 걸어들어가는 코끼리가 발을 뗄 때마다 환상교향곡이 시작되네요 심장을 스쳤나봐요 난 순간의 화석으로 굳어 300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거쳐 먼지가 되어버렸다는 전설이 되어 흩어져 버리네요 색깔을 말해 주세요 점자는 색깔을 읽지 못해요 나의 머리칼로 무지개를 칠해 드릴까요 손톱만큼 깨물어도 보았죠 이 거대한 심장 속에 불화살처럼 박혀도 더 알고 싶은 연민이 나를 풀어줄까요 만져지지 않아도 자꾸만 만져요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마음처럼 한 번씩 치부에 닿아 비린 절망을 맛보기도 했을까요 이렇게 크다보면 절벽도 있고 들판도 있는거잖아요 내게 오는 당신의 다리는 그 절벽쯤에 있었고 나를 태우고 달리던 당신의 무등은 저 허허로운 들판쯤에 있었나요 당신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어요 코, 끼, 리,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블랙홀 속으로 돌개바람을 일으키는 오로라의 현기증으로


대체 이게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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