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63
어제:
306
전체:
5,023,076

이달의 작가
2010.02.28 08:14

아홉 손가락

조회 수 373 추천 수 4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홉 손가락



이월란(10/02/23)
  


야간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이름도 모르는 그는
등 보이는 두 손을 내밀며 로숀병을 눈짓으로 가리킨다
손 씻었니? 서로 웃자고 하던 장난질 속에서
그의 손가락들이 어느 지점에선가 간격이 벌어져 있음을 알았다
손가락은 언제 잘라 먹었어?
그 순간, 아픈 줄도 몰랐었지 잘린 쇳조각들이 무시무시한
그 쓰레기통으로 쳐박혀 버렸어
찾았어도 소용 없었대 하필 관절이었거든
내 주위에 어떤 놈은 네가 20대 아가씬줄 아는 놈도 있어
내 뒤통수만 보았군 누나를 놀리면 못써 잘 가라는 내 미소에 살짝
기름을 부을 줄도 아는 이 순진한 친구
세상이 킥킥, 너의 그 순진무구한 웃음같다면
다 늙어빠진 세상도 20대로 보이는 너의 친구란 놈은, 낙천주의자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관절을 물고 달아나버린
너의 잘린 손가락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으로 기어들어가는,
쇳조각같은 타인의 기억의 날에 살을 베이는
나는, 비관적인 이상주의자
잘린 검지를 살짝 오므리면서도 아홉 손가락 당당히
펼칠 줄 아는 너는, 현실주의자
나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묻지 않고
그의 잘린 손가락이 되어 접붙인 듯 관절을 꺾어보고
또 꺾어보고,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퇴역군인의 잘린 팔처럼 떠도는 과거가
뚝뚝, 내 발등에 떨어지고 있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5 립스틱, 내가 나를 유혹하는 이월란 2009.12.22 413
344 리크 leak 이월란 2009.11.16 332
343 로봇의 눈동자 이월란 2009.09.19 478
342 로또 사러 가는 길 이월란 2011.12.14 742
341 레테의 강 이월란 2011.07.26 508
340 레퀴엠(requiem) 이월란 2008.05.10 227
339 레모네이드 이월란 2008.05.09 364
338 레드 벨벳 케잌 이월란 2010.10.29 715
337 라일라* 이월란 2008.12.19 253
336 라식 이월란 2009.02.03 269
335 뜨거운 기억 이월란 2009.03.21 253
334 똥파리 이월란 2009.06.17 328
333 똥개시인 이월란 2009.04.07 254
332 또 하나의 얼굴 이월란 2008.05.08 414
331 떠난다는 것 이월란 2011.09.09 268
330 떠 보기 이월란 2011.12.14 254
329 땅을 헤엄치다 이월란 2014.10.22 205
328 딸기방귀 이월란 2010.04.05 455
327 디카 속 노을 이월란 2009.07.27 297
326 디아스포라의 바다 이월란 2008.09.06 219
Board Pagination Prev 1 ...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 52 Next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