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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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12.04.10 10:46

꿈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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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


이월란(2012-3)


터진 종기가 반투명한 맨살을 타고 흘러 내렸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가늠키 위해선
타고난 핏줄을 먼저 헤아려보아야 한다
푸른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곁눈질을 배우는 사이
하늘로 자라는 나무들도 선택 당하고 편집 당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배우며 엎드린 땅을 기어오를 때
같이 구르지 않으면 해가 뜨거나 질 때마다
고꾸라진다는 사실은 세상 밖에서도 훤히 보인다
CG 처리된 SF 필름 같은 화염이 배에서 피어올랐다
나의 아기들도 그렇게 태어났더랬다
모함 받은 언니들은 잘들 살고 있을까
구석기 시대에 죽어버린, 위대했던 엄마는
알타미라 동굴 속에서 손가락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다
우주선처럼 재앙을 타고 돌아온 아버지는
수컷이 더 아름다운 동물의 세계가 펼쳐진
브라운관 속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신성한 저수지에서 건져 올려진
나는 가무잡잡한 남동생의 성기 아래 잠복해 있다가
무시로 구애의 퇴짜를 맞았다
사랑니를 뽑히고 누워 있던 엄마는
해질녘이면 이상한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고
갈라진 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멀쩡히 돌아다녔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불길이 물길로 바뀔 때마다
리얼리티는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별들이 사는 하늘과 뱀들이 사는 땅은 영원히 교차될 일이 없다
성숙하고 사라지는 월경 주기처럼
한 때 아기가 울었던 동굴은 블랙홀처럼 전원이 나가버렸다
재래식 부엌에 눈높이를 따라 리모델링된 현대식
싱크대 선반 구석에서, 원금만 불어난 평생의 비자금이
낯익은 가방 속에서 둥둥 떠내려가 얼른 붙들고 열어봤더니
텅, 비어 있는 집
엄마, 아버지는?
표적 없이 뒤섞여버린 지난밤 이야기들은
불면의 담장을 넘어온 전생의 괴한처럼
페차쿠차의 슬라이드 위에서 몇 초 만에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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