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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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9.09.04 04:45

라스트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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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노트



이월란
  



가을의 성화는 밤마다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이면 앞마당 오른쪽의 메이플 나무는 조금씩 그리고도 화려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정수리에서 어깻죽지로, 어깻죽지에서 붉은 손자국 풍만히 흔들리는 허리로. 그 단풍잎만한 작은 소포꾸러미를 받은 것은 지은지 십 년이란 이 집의 나이처럼, 열 번 가슴을 태우고 또 열 번 옷을 벗은 그 나무가 아랫도리까지 생리혈처럼 타오르고 있을 때쯤이었던가. 그 홍엽의 손끝이 살짝 드리운 메일박스 속에서 앙증맞은 상자를 꺼내었을 때가. 매월, 계절따라 혹은 수시로 L.A.나 서울에서 문학지나 동료시인들의 시집이 종종 소포로 배달되기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시집이라고 보기엔 터무니 없이 작은 사이즈의 소포엔 우리집 주소가 찍힌 스티커만 달랑 붙여져 있었다.

내가 보내놓은 편지같은 하루는 어쩌면 신(神)으로부터의 답신을 기다리며 메일박스로 걸어가는, 이 짧은 드라이브 웨이의 습관적이고도 순간적인 설레임으로 퇴고되어버리는 픽션같다. 시간과 공간의 유리벽 속에서 내가 닿을 수 없는 시간에,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나를 향해 배달되어지는 무명의 안부들처럼. 신물나도록 낯익은 땅만 딛고 사는 우리들에게 어디선가 멀리서 날아오는 것들은 모두 새처럼, 나비처럼 싱그런 날개의 냄새가 난다. 미지의 푸른 해조음이 섞여 있다.

언젠가 단시만을 모아서 요렇게 작은 미니시집을 한 번 내고도 싶다는 생각을 하며 차고를 지나 키친으로 들어왔다. 황톳빛 갈포지를 뜯자 얇은 버블포장으로 덧씌운 녹둣빛 박스에는 CHANCE, CHANEL, EAU FRAICHE 이란 단어들이 은박으로 박혀 있었다. 창 밖의 나뭇잎처럼 팔랑팔랑 떨어져내린 노란색 메모지에 깨알처럼 박힌 글씨들이 보여 얼른 집어들었다.


세 월

새끼손가락 만한 여행용 향수병을 가지고 다녔다
여행을 얼마나 자주 간다고
여행지에서만 한 두 방울씩 뿌린다면
평생을 뿌리고도 남았을 양이었다
여행 중이던 어느 날
귓불 뒤에, 손목 위에, 맥박 따라 새겨두려 보니
작은 벨벳 주머니 속에서 뚜껑이 반쯤 열려 있다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다 날아가 버렸다
어디로 간 것일까
꽃도 아닌 것이, 나비도 아닌 것이
누구의 맥박 위에서 훨훨 날개를 풀었나
그 많은 향기들은  


<세월>과 <새끼손가락>이란 제목과 첫 단어를 읽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쓴 시였다. 내가 써 놓은 시들은 자주 내게 혐오증을 일으킨다. 다말을 범한 암논의 그 혐오증을 닮아 있기도 하다. 응집력 약한 설사처럼, 2년 전부터 배설하기 시작한 나의 토사물같은 글이었다. 문학지 홈피서재에 버젓이 공개되어 있는 것들임에도 누군가의 눈으로 다시 읽혀진다는 것이 아직도 편칠 않다. 하물며 누군가의 손으로 필사된 나의 시는 도둑맞은 일기장을 되돌려 받은 것처럼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초가을에 한국에 갔었다. 기본요금 거리의 지하철역까지만 늘 택시를 타고 다녔다. 어느날 택시 안에서 핸드백 속에 넣어 둔 미니 향수병을 꺼내었을 때 텅 비어있는 유리병을 보곤 기가 막혔었다. 회전식 뚜껑이 아니었던 탓에 핸드백이 어딘가 부딪치면서 코르크 마개식 뚜껑이 비뚤어져버린 것이리라. 똑같이 김치냄새 풍기는 사람들 속에서 향수야 안뿌리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깡그리 날아가버린 향기들은 우습게도 내가 살아 온 세월의 가면을 쓰고 달아나버렸다. 아니 태평양을 건넌 후의 붕 떠린 세월로 갑자기 둔갑을 하는 바람에 목동 지하철역 앞에 택시가 멈출 때까지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었다. 20년을 더 뿌리고도 남았을 여행용 향수가 지난 20년의 세월꽃을 다리고 다린 에센스가 되어 훨훨 날아가버린 것이다. 내 눈 앞에서.

향수란 그저 지난날의 희망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바람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영혼의 연금술사들이 이 작은 유리병 속에 가두어 두고자 열망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향수는 고대의 신성한 사원에서 도륙된 짐승을 제물로 바칠 때에 살이 타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시체에 뿌리는 탈취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향 자체가 제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나쁜 냄새를 숨기려는 실용적인 탈취제에서 그 자체로서 귀중한 물품이 되어 온 것이다. 집안 가득 방향을 가득 채워 시저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는 클레오파트라는 손에는 장미와 크로커스와 제비꽃의 기름인 키야피를 바르고 발에는 아몬드 기름, 꿀, 계피, 오렌지꽃, 헤나 등으로 만든 에집티를 발랐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를 만나러가는 클레오파트라가 탄 돛배를 이렇게 묘사했다.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려서 바람마저 상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사향노루의 수컷 하복부 피하생식선에서 나온다는 사향, 비버의 항문 근처에서 채취한다는 해리향 등, 향수의 기본재료들 중 몇 가지들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동물의 악취나는 분비물에서 온 것임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장미향수를 유행시켰던 네로황제는 하루저녁의 파티를 위해 오늘날 화폐가치로 16만달러어치의 장미꽃잎을 태웠단다. 깃털처럼 가벼운 장미꽃잎은 200파운드를 모아야 향수 1온스가 나온다니, 급기야 향수가 귀족들을 중심으로 타락과 사치의 동의어로 전락되기도 했던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의 소설 <향수>에서 천재 조향사 장 그르누이를 통해 여인들의 향기를 가두고 싶어 연쇄살인을 저지르까지 했다.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그르누이가 태어난 18세기 프랑스의 악취나는 생선시장 바닥만큼이나 역겨운 것이다.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잔혹한 슬픔이다.

치명적인 향기는 영혼까지도 지배한다. 이민의 카오스를 항해하면서 내가 숨기고 싶었던 악취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몇 푼의 동전으로 좌판을 붉게 물들인 생선의 내장 같은 태의 비린내였을까. 생명을 저당잡히고 삶의 노예가 되어버린 날내나는 육신이었을까. 선과 악이 교접하여 태어난 기형의 박테리아가 풍기는 일상의 지린내였을까.
이 집안엔 층마다, 방방마다 색색가지의 초들이 수두룩하다. 큰 것, 작은 것, 가는 것, 굵은 것, 둥근 것, 네모난 것, 별모양까지. 밥을 먹고나면 남편은 매일 촛불잔치를 한다. 무지개색으로 주욱 늘어선 파라핀들은 저마다 품은 향낭으로 그렁그렁 촛물을 이고 있다. 그가 휙휙 지나가며 창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억의 바람 앞에 노란 불꽃들이 꺼질 듯 잦아들기도, 몸을 녹여낸 비색(悲色)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쁜향과 좋은향을 철저히 가려서 태우기 시작한다. 서양식 초의 활성탄은 김치의 분자간 구멍을 파고들기도 하고 아로마의 향기분자는 마늘향에 숯알갱이를 덮어씌우기도 한다. 코리언의 냄새입자들은 이 집안에서 제거되어야 할 역한냄새로 딱지가 붙어 그을음의 긴 꼬리 속에 가물가물 숨을 거두어야만 한다. 초록색 초에 불을 당길 때 그는 이민 온 바로 다음 날 초록잔디가 깔린 고모네집 뒤곁에서 오줌을 갈기던 장면을 기억해내는지도 모른다. 붉은색 초에 불을 놓을 때 그는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한 서양인 고모부가 뛰쳐나와 혁대로 어린 그의 등을 후려치던, 그래서 붉은 뱀처럼 꿈틀대던 등짝의 상처를 기억해내는지도 모른다. 공처럼 둥근초에 불을 붙일 땐 농구연습 후 통통 튀는 공을 놓쳐버리고 달려가던 그를 붙들고 <땀냄새가 고약하군, 황인종들이 마늘과 같은 종이란 사실은 꽤 흥미로워>라며 빈정대던 노랑머리 아이의 동그랗고 파란 눈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잠자리에 누운 나는 그가 내일 입을 속옷들을 주욱 늘어놓고 피식피식 는개같은 향수방울을 뿌려대는 소리에 늘 잠이 든다. 결혼 전에도 그는 편지지마다 향수를 뿌려서 보내곤 했다.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아니 과용하시던 그 향내와는 무엇인가 다른, 바다를 건너온 그 향수냄새에 취해서 열심히 해석을 하고 열심히 영작을 했었다. 솔트레이크 국제공항에서, 앞으로 펼쳐질 단내나는 이민의 애환을 몰래 안고 있었을 묵직한 이민가방을 끌고나오는 나를 몽롱히 위로해 준 것은, 6개월동안 영한사전을 앞에 두고 후각이 마비되도록 맡아왔던 그의 익숙한 향수냄새였다.
  
세 개의 냉장고엔 한국음식과 미국음식이 철저히 분리되어 서양인이 방문하는 날은 김치가 든 냉장고에 <NO TOUCH!!>란 사인이 붙는다. 엄동설한에도 그의 옷들은 한번씩 데크에 나가 칼바람을 맞아야 들어올 수 있다. 등푸른 생선이 그리운 나는 한국마켓에 갈 때마다 몇 점 먹겠다고 벼르다가도 집었던 생선을 도로 내려 놓고야 만다. 푸른 제복을 입은 그가 퇴근하면 개코처럼 영특해진 코를 벌렁거리며 놀던 물 잃은 생선처럼 날뛸 일이 버겁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의 건더기들은 혀만 만족시킨 뒤 어금니로 꼭꼭 씹어 식도를 지나 배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흔적은 없애는 것이 좋다. 오늘밤도 길들여진 불꽃들은 아른아른, 허공을 한식과 양식으로 분리하고 있고 어둠의 창마다 꽃이파리같은 유목의 그림자가 불꽃따라 춤을 춘다. 숨가쁜 증거인멸의 작업을, 지구를 돌아온 보름달이 몰래 알리바이를 기록하며 푸른 증인석에 빠꼼히 앉아 있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 즉 자신의 영역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파스칼은 말했었다. 가끔 아니 자주, 향기에 영혼을 부여하듯이 그렇게 연기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태평양을 건너 왔듯이 또 건너고 싶은 미지의 바다가 눈 앞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향수를 처음 뿌렸을 때 나는 탑 노트와 미들 노트를 지나 여러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체취와 향료가 섞여서 나는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가 라스트 노트라고 한다. 향수의 품질을 결정하는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라스트 노트가 시작되는 인생의 중반을 넘어, 마지막 한 방울의 향기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속절없는 육신의 허기가 버거워지는 요즘이다. 해지면 향기마저 잃어버리는 재스민꽃처럼.

<나는 자신이 사용하는 향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여성들이 불쌍해요. 향은 그 자체가 말해야 합니다. 향은 은밀하게 속삭이니까요.> 라고 했다는 그 샤넬의 향수를 한 방울 뿌려본다. 연못빛 향내가 나의 체취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취신경을 현혹해버리는 향수 몇 방울처럼 사라져버릴 가벼운 목숨도 어설픈 시향(詩香) 한 줌 무명의 독자로부터 이렇게 날아오는 날이면 저 앞마당의 단풍나무처럼 활활 타오르게 된다. 나의 영혼도 나의 영역을 벗어나 외출을 시도할 때면 저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의 그 눈빛으로, 순간적으로 행복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의 그 입김으로 봉해 놓은 내 영혼의 향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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