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97
어제:
265
전체:
5,022,351

이달의 작가
제1시집
2008.05.09 11:49

페인트 칠하는 남자

조회 수 344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 월란





축구공만한 페인트통에 바다를 퍼 왔다
삶의 햇살에 찌들어 갈라진 황토빛 지붕 위에 앉아
육신의 허리에 심어진 가훼들이 베어지고
청초했던 푸새들도 뽑히어져 황토가 뻘같이 드러나버린
그의 건토에 이제 도도히 바다를 심고 있다
기와지붕 텃밭에 이맛전의 주름살같은 고랑을 파고
한 이랑 한 이랑 뇌수의 꿈조각같은 씨앗을 뿌린다
노가리 한 감청색 홀씨는 바람을 먹고 자랄 것이다
파란 심줄이 돋아난 손목에 쥐어진 붓이 움직일 때마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소리를 내고
사다리를 옮겨 놓을 때마다 철썩철썩 파도가 솟구친다
이마 위의 땀을 닦을 때마다 끼륵끼륵 바다갈매기가 날아가고
하얀 수말이 암벽에 부딪히듯 그의 60평생 뱃전을 두드린다
잠시 고개 든 시선은 정확한 나란히금으로 수평선을 그어
동색의 하늘을 정확히 갈라놓는다
옥개석 가에 둘러쳐진 비닐커버들은 흰포말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뱃전 너머에 총총히 심어진 바다는
가을 아침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저 작업이 끝나면
저 남자는 출렁이는 바다 위에 누워 타원형 널빤지를 타고
정년의 여생을 실어 파도타기를 할 것이다
새벽별들은 늙은 등대수가 된 그의 욱신대는 뼈마디마다 내려와
등대불되어 반짝여도 줄 것이다
아침이면 그는 수역으로 둘러싸인 백파의 바다에 뜬
별보다 먼 절해의 외딴섬이 되어 있을테니까

                                        
                                                            2007-05-21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2 제1시집 그대 내게 다시 올 때에 이월란 2008.05.07 702
81 제1시집 잔풀나기 이월란 2008.05.07 570
80 제1시집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이월란 2008.05.07 544
79 제1시집 세월이여 내 사랑만은 이월란 2008.05.07 537
78 제1시집 장대비 이월란 2008.05.07 527
77 제1시집 의족(義足) 이월란 2008.05.07 521
76 제1시집 푸쉬킨에게 이월란 2008.05.07 510
75 제1시집 동대문 이월란 2008.05.09 485
74 제1시집 마음의 거리(距離) 이월란 2008.05.08 484
73 제1시집 호접몽(胡蝶夢) 이월란 2008.05.09 453
72 제1시집 울초 이월란 2008.05.08 450
71 제1시집 별리동네 이월란 2008.05.07 446
70 제1시집 무통분만실 이월란 2008.05.08 444
69 제1시집 한글교실 이월란 2008.05.07 441
68 제1시집 부음(訃音) 이월란 2008.05.09 428
67 제1시집 삶은 계란을 까며 이월란 2008.05.09 415
66 제1시집 탑돌이 이월란 2008.05.07 412
65 제1시집 사명(使命) 이월란 2008.05.07 412
64 제1시집 수화(手話) 이월란 2008.05.09 409
63 제1시집 부를 수 없는 이름 이월란 2008.05.08 40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