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문신

by 이월란 posted May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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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文身)


                                                                                                                          이 월란




아프냐구요? 이런 것도 고통의 일종이라면요 살갗이 따끔따끔 뜯겨져 나갈 때마다 난 다시 태어나죠
먼셀 표색계 5BG 5/10의 청록옷을 입고 숲이 되어요 새들이 날아오고 바람도 집을 지어요 나무처럼
뿌리 내리다 새처럼 날아가는 맨발의 인연들 그이와 들길을 걷고 싶었을 땐 한 쪽 팔 가득 들꽃을 심
었어요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이 되고 싶어 발목 가까이에 낙엽을 찔러 넣었구요 난 가을나목같은 거
리의 분홍녀지만 백계 러시아 소공주의 얼굴이 가슴에 새겨져 있답니다 호수에 내 얼굴을 비춰볼 땐
나르키소스처럼 수선화가 되고도 싶었죠 누군가 등 떠밀어 나와 본 세상은 그렇더군요 나를 기다리
고 있던 마네킹같은 몸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거지요 나를 사랑하고 싶었어요 오늘은 호면같은 허벅
지에 파문을 새기러 가요 얄팍한 시선의 사람들은 나의 현란한 문신에만 눈이 가죠 귀가 얇은 사람이
나의 가성에만 솔깃하듯 리비도의 어둠이 밝아오면 입안이 죄다 헐어 있었어요 내 생애 악보에서 돌
체라는 악상기호를 난 혐오하죠 온 몸에 부맥이 뛰는 태양병 환자가 되었어요 그런 아침은 햇살이 더
눈부시더군요


프리웨이의 출구를 놓쳐본 적이 있나요? 그 길을 벗어나야만 돌아가는 길이 보이죠 후진기아를 넣거
나 유턴을 하는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죠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