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노안

by 이월란 posted May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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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  2 (개작)

                                                   이 월란




눈 맞춘 언어들이 아른아른 울고 있다
새겨진 표음 외에 무엇을 더 말하고 싶은걸까
실눈으로 가늠해 보지만 핏발 선 세파의 둔덕 위에서
잔물결만 타고 논다
손으로 부욱 찢어놓은 종이처럼 매끈하지 않은
범상치 않은 생의 가녘
가물거리던 삶의 윤곽은 이렇게 감지되고야 마는 것인가
궁핍했던 반생의 여독으로
건드리면 움츠려드는 미모사같은 천성의 수치로
눈물 없이도 울어야 하며
수정같이 맑은 날에도 막연히 안개 자욱하여
망막의 초점은 가슴으로 내려 앉고야 말았다고
보이는 것에 더 이상 온몸을 의지할 수 없음은
위태로워짐은 정녕 아니리라
시선의 교란이 도리어 다독여주는
가슴의 문자는 더욱 선명하여짐에
육안의, 결코 반갑지 않은 이 신호는
위태한 비명으로도 왔다
잠든 아기의 배냇짓 한숨으로도 오는
낯뜨거운 착란의 가슴으로도 왔다
성호를 긋는 무흠한 손짓으로도 오는
조율되어져야 할 생의 비밀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 것일까
파열음 하나 없이 흩어져버린 지난 날의 언어들
나의 체온으론 더 이상 데워지지도, 식혀지지도 않을
지상의 언어는 빙점을 건넜을까 비점을 넘었을까
세파의 문자가 망막 위에서 길을 잃으면
굴절된 시력 아래서 가슴의 조리개가 초점을 맞추며
차르락 차르락 손내미는 소리


                                                     200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