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넘어지는 세상

by 이월란 posted May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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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세상



                                                                 이 월란



한 걸음으로 내려가기엔 너무 넓고
두 걸음으로 내려가기엔 너무 좁은 계단 세 개
목숨이 달린 중대한 결정도 아니라
늘 첫 계단을 내려오고서야 어중간한 폭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 계단을 내려 가기 전, 난 재빨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말을 빨리 할 때 혀가 말리듯이
다음 계단을 내딛는 순간 두 발이 엉겨붙어 난 넘어졌습니다
골똘한 생각에서 마저 벗어나지 못한 뇌파가
한 걸음과 두 걸음 사이에 놓여 있을 때
벌써 성질 급한 두 발이 습관처럼 움직여버린 것입니다
높은 계단에서 하이힐이라도 신고 있었다면
발모가지 한 짝 성치 않았겠습니다


어른이 되어 넘어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엄마아아아아아
넘어져 울고 있어도 달려와 일으켜 줄 엄만 내게 없습니다
아파도 안 아픈 척 일어나야 하며
무르팍이 깨어져도 피를 닦아내고 몇 날 절뚝거리다 보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습니다


충분한 생각의 뇌파가 전달 되기도 전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몸의 지체들
이렇게 혼자서도 넘어지고, 서로 걸려 또 넘어지고
온통 넘어지는 세상입니다


난 오늘도 또 혼자 넘어졌고 울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턴 절대 혼자선 넘어지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하면서, 눈물 몇 방울 떨어지고야 맙니다
어른이 되어 넘어진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200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