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빈방

by 이월란 posted Aug 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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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이 월란




누군가 몸만 떠난 빈방 하나
두고 간 마음만 남아 먼지같은 시간을 받아내고 있다
그 방엔 나의 방과는 다른 속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한 달 내내 정지해 있던 시간이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에
물둑 무너뜨리고 한껍에 쏟아져 내리는 곳
글썽이는 시야 속에 어느 한 순간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곳
그 방엔 내가 마시는 공기와는 다른 색깔의 공기가 머물고 있다
아무에게도 저항하지 않는 무언의 기체가 숨쉬는 나라
네 귀퉁이가 사계절을 물고 있어
봄꽃이 활짝 피어도 한쪽 몸이 시리고
겨울눈이 내려도 이마엔 식은땀이 난다
계절이 역류하는 곳
희붐한 새벽이 제일 먼저 밝아오는 곳
항간의 돌림병이 결코 침범치 못하는 공방
꿈속같은 흐느낌 어둠 속에 불빛처럼 새어나와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슬픔의 완장을 찬 사람들이 여린 가슴을 호령하는 곳
애증의 강이 시시때때로 범람해도 결코 잠기지 않는 문턱에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신발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 있다
외계인같은 아기사진 하나 밤낮으로 웃고 있다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그 방안에서
나는 아직 한번도 나오지 못했다    
                                    
                                                              200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