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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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3시집
2008.10.30 13:44

내부순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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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순환도로


                                                                                                                        이월란



나의 내장이 일렬종대로 줄을 선다. 헛다리로 품팔던 대학로에서 저 푸른 목성까지, 네비게이션의 낭랑한 멘트로 ‘내부’라는 말과 함께 가도 가도 끝없다. ‘순환’이란 말과 함께 반향 없는 휘파람 불며 걷는 눈먼 길꾼이다. ‘도로’라는 말과 함께 늙어가는 이차선변에 집을 지었다.


이별의 방마다 덧댄 연창 가득 하루 삼십만 개의 소통이 질주한다. 과녁 없는 포물선 궤도(궤도의 이심률은 1이며, 두 천체 사이의 상대 속도는 거리의 제곱근에 반비례하므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상대 속도는 0에 접근한다.)가 그리 낯설지 않다. 욱신욱신 이국의 수풀 가득 맨살 돋아 혼백을 부르는 소리, 허공의 일천계단을 밟아온 길이 있어 가지마다 목맨 뭇꽃들, 외줄기 타고 오른 저마다의 길이 있어 저토록 뼈저린 직립의 야경. 하늘바다 끝 포구는 멀다. 벗어나야 한다.


성산출구에서 맞닥뜨린 종근당 플래카드, 미수금 받아 드립니다, 대출해 드립니다, 베트남결혼 전문, 대리운전, 신호가 바뀐다. 또 다른 나의 내부, 신호등도 살아 있다. 바퀴 달린 것들은 모조리 도로로 진입해버린 이 아름다운 욕루의 체증.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상습정체구간, [연희램프에서 홍제램프, 72km/h 통행시간 3분, 소통원활] 해뜨지 않는 붉고도 푸른 램프와 램프 사이, 입체교차하는 두 개의 운명이 닿은 비탈진 절망의 항로 가득 알 수 없는 주행거리는 모두 일방통행이다.


도로는 알맞게 휘었다. 서행하다 멈춰버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수면부족의 푸석한 날들. 진입로와 진출로의 숫자는 동일하다. 하부도로의 신호체계에 길들여져야 하는 기막힌 설계도 위에서 두 대의 차량이 탈선했다. 험란한 지형을 가로질러, 기둥 따라 세워진 밀폐된 고가도로 위에서 블랙베리 손가락*을 앓고 있는 핸드폰의 별빛 미니자판이 1,1,9,를 차례로 깜빡이고 있다. 무한궤도가 장착된 허공은 공중분해 중이다. 견인차량 한 대가 순환하다 순환하다 출구를 찾지 못한 중고차 하나 끌고나가고 있다.


                                                                                                                  2008-10-30


                            

* 블랙베리 손가락 :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생기는 손가락 근육통으로 미국 물리치료협회에서 정신직업병의 일종으로 인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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