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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05:32

어떤 진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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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실 게임

오정방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매년 5월 마지막 월요일로 공휴일이다.
이날은 연휴가 되기에 교회에서는 가족수양회를 다녀오게 되었다.
해마다 그렇듯이 이날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거나 하였고 청명한
날씨는 별로 없었던 기억만 갖고 있지만 올 해도 좋은 일기는 아니었
으나 이미 오래전에 계획했던 것이라 1박 2일의 일정을 잡아 교회에서
주일예배 후에 출발하였다. 수양관은 교회에서 1시간이 족히 걸리는
산 속에 있었다.
교회 모임이라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만 드리다가 오는줄로만 생각
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으나 한 단체가 움직이며 1박 2일을 지내는 동안
기억에 남고 즐겁게 보내다 오려면 그것 외에 건전하고 특별한 오락이
곁들여져야 한다. 이 번에도 담당자를 분야별로 세우고 여러가지 필요한
프로그람을 짜도록 준비했는데 오락을 담당하여 진행을 맡은 K권사의
‘눈 가리고 와이프 찾아내기’ 프로는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게임의 진행은 남편들이 앞으로 나가 넥타이로 두 눈을 모두 꽁꽁 가리는
동안 부인들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일렬 횡대로 선다. 남자들이 두 눈을
다 가렸을 때는 이미 자기 와이프가 어느 자리에 서있는지를 도무지 분간
하지 못한다.
진행자가 눈 가린 장님을 여자들 앞으로 데리고 가서 손을 더듬어 아내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나는 게임에 참가한 열 두명 가운데 다섯 번째인가에
섰는데 벌써부터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먼저 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여자의 손을 더듬으며 긴가 민가 하는가 모양이다.
설사 바로 알아 맞췄다 해도 뒷 사람을 위하여 입은 다문채 웃기만 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보통 때면 엄두도 못낼 일을 이 시간은 허가 받고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다른 여성의 손을 잡아보는 것이다.
한 여자를 통과 했다. 둘 째도 통과했다. 셋 째 여자의 손을 잡았는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망설여 진다. 그러나 감이 아닌듯 싶어
통과했다.  다시 다른 여자의 손을 더듬는다. 그러는 동안 정말 못알아
맞추면 어떻게 하나, 못맞출 경우 그 위기를 어떻게 웃음으로 넘겨야 하나.
아내의 실망은 얼마나 클까? 등 등 아주 빠른 순간에 머리가 많이 복잡해
졌다. 아들은 눈을 가리고 있지만 며느리와 손녀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 아내 손을 자주 잡아보았더라면 더 쉽게 알아 맞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설사 그랬더라도 비슷비슷한 여자의 손인데 눈감고 쉽게 알아 맞추
기는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탈출구를 만일을 위해 찾아보기도 했다.
젖은 손이 애처러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이란 노래가사가 있지만 몇 번이나
살며시 잡아보아야 금방 눈감고도 알아 맞출 수 있을까? 내가 우스개 소리
한마디를 하며 초를 쳤다. 여자의 손을 잡아보고 전기가 통하면 남의 여자
이고 전기가 안통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아내의 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하니까 다시 한 번 장내가 웃음이 터졌다. 그런 기준으로 아내를 잘못 짚으면
아직도 당신은 전기가 통한다 할 것이요, 그 반대이면 내 판단법이 틀림없지?
하고 한 소리 하려든 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넷 째 여자도 지나갔다. 다섯 째 여자도 아닌듯 싶어 지나갔다.
여섯 째 여자의 손을 만진다. 점점 더 어려위 지는데 좀 더 신경을 써가며
자세히 촉감으로 살핀다. 앞으로 몇 여자가 더 남이 있건마는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더듬어볼 기회가 또 있음에도 어쩐지 발걸음이 더 나가지 못하고
‘이 사람이 내 와이프다’ 하고 점을 찍고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정말 맞추고
싶었다. 참말로 틀리지 않기를 바랬다. 나보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은 이미
다 끝났고 다시 내 뒤로 다른 남자가 처음부터 여자의 손을 더듬으며 지나
온다. 그 때에 나는 눈가리개를 풀고 마지막까지 다 지나가는 게임장면을
보았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다. 한 남자는 아내의
손을 잡고도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는 순간 그 아내의 얼굴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것도 같았다.
많이 많이 웃는 가운데 진실게임은 모두 끝났다. 12명 가운데 4분의 1인
3명만이 틀리고 나머지 9명은 눈을 가리고 손만 잡아보고 아내를 찾아냈다.
우연히 아들도 나도 이 9명 가운데 끼긴 했지만 만일 맞추지 못했다면
두고 두고 무슨 말을 얼마나 듣게 되었을까?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아내에게
체면을 세운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그 반대의 입장
이었다면 아내는 눈을 가리고 내 손만 잡아보고 나를 찾을 수 있었을까? 글쎄다.

게임은 게임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맞출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맞추었다
하여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맞추지 못했다하여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맞추었거나 아니거나 간에 한 번 웃고 넘어갈 일이지
‘자기 와이프도 못알아봐? ‘하고 마음에 둘 일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 200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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