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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08:54

8월 15일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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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과 나

  오정방
  

  
8월 15일은 나의 호적상 생일이다. 6남매중의 다섯 번째인 나는
태어난 뒤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출생100여일만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호적에 올랐는데 그 날이 바로 8월 15일이다. 지금도
생각하는 일이지만 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도 아닐텐데
절묘한 날을 택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두고 두고 기억하기 좋은 날이냐. 그러나 한 번도 생일을 차려먹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실제의 생일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1941년 신사생이니 해방을 맞은 것은 내 나이4살 때의 일이다.
솔직히 말해 그 때의 기억은 별로 없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태극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타의에 의해 깃발을 흔들었
을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은연중에라도 8월 15일은 언제나 나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그 뒤에 철이 들면서 8. 15 광복절은 어느 경축일보다 좋았다. 하루를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비록 가짜 생일이지만 이 날에 쉬는 것만은
조금도 나쁠 것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내 호적 생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 않아도 이 날은 나의
법적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몇 친구들로부터 생일
인사를 받기까지 했으니 더욱 잊기 힘든 날이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5년 8월 15일에는 광복 60주년 회갑을
맞으면서 축시 1편을 발표했고 3년 뒤인 올해 8월 15일은 우리 정부
수립60주년을 맞으면서 또 1편의 축시를 썼는데 ‘한국일보’와  
‘미래한국’ 신문에 게재되었고 지역 방송에서도 당일 아나운서를
통하여 낭송된 것을 다시 한 번 근작순으로 나도 읽어보며 조국을
그리워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세계 속의 한국으로 우뚝 서 달라고…
정직하고 건강한 나라가 되어달라고…

<2008. 8. 20>

…………………………………………………………………………


내 형제자매여, 어서 태극기를 높이 달아라!
창공에 펄럭이는 저 태극기
느껍고 자랑스럽지 아니하냐
감격에 겨워
눈시울마저 뜨겁지 아니하냐
나라 없는 설움으로
숨도 맘대로 못쉬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웃음조차 눈치를 보았던
그 빼았긴 시대를 뛰어넘어
광복의 기쁨을 맛본지 3년만인
1948년 8월 15일
드디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깃발이 높게 높게 펄럭였다
이제 그 날로부터 60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나고 죽고
수많은 사건과 정변을 거쳤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세계속의 한국으로 우뚝 섰나니
이제는
이남도 없고 이북도 없고
우파도 없고 좌파도 없고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고
삼팔선도 없고 휴전선도 없고
촛불시위도 없고 파업투쟁도 없이
같은 모국어를 쓰는 우리들이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용해서
반만년의 역사를 더욱 빛낼 수 있게
오직 하나의 조국만이 빛날 수 있게
머리를 맞대자, 뜻을 합치자, 힘을 모으자
그리고
소망의 미래를 향해 다같이 가슴을 활짝펴고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하자!

< 2008. 8. 15>

                            - 졸시 ‘창공에 태극기를 높이 높이 달아라!’ 전문




침략을 일삼던 저네들이 천황天皇이라 일컫는
히로히또 일본왕이 침울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국의 패전을 인정하며 무조건 항복한다는
긴급 뉴우스가 라디오를 통하여 들려올 때
핍박과 압제 가운데 있던 우리 동포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하나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거리로 물결처럼 뛰쳐 나왔으니
해방의 그날, 바로 60년 전 을유년의 일이다
조국광복의 그 벅찬 감격과 기쁨을
만세의 함성으로 표출했던 우리 선조들
잃었던 나라 되찾은 감동에 마냥 흥분하였다

일본은 더 이상 앉아서 버틸 수가 없었다
36년 간이나 한결같이 내선內鮮일체를 외치며
말을 빼았고 글을 빼았고 정신을 빼앗으려
억누르고 짓눌러 창씨개명까지 강압하였지만
우리선조들은 말도 글도 버릴 수 없었고
더구나 배달의 얼은 절대로 내 칠 수 없었다
사전 예고를 거쳐 히로시마에, 나가사끼에
침략을 응징하는 미국의 원자탄이 투하되고
수 십만명이 크게 다치거나 죽어갔기에
마침내 막다른 항복의 길을 택할 수 밖에는
또 다른 길이 침략국 일본에겐 전혀 없었다

우리 독립투사들의 참된 저항은 헛되지 않았다
기미년 만세운동에 일본은 간담이 서늘했고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의 역사적 의거는
대한의 기개를 유감없이 만방에 보여주었다
잔악한 일본경찰이 애국지사들을 고문했으나
그들의 투철한 애국정신마저 앗아가지는 못했고
인면수심의 일본병사들이 우리의 누나들을
정신대란 이름으로 전장戰場으로 끌고 갔으나
한 시時라도 그 속마음만은 빼앗지 못했다
오, 잃었다가 어떻게 되찾은 내 나라인가
조국이여 영원하라, 대한민국이여 무궁하라!

< 2005. 8. 15>

          - 졸시 ‘광복 60주년, 조국이여 영원하라’ 전문


  



⊙ 작품장르 : 시와함께하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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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학의 삼다주의三多主義

  2. 봄은 이미 깊은데..

  3. 어느 서예가로부터…

  4.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5. ‘하이, 하부!’

  6. 아직도 찬 바람이…

  7. 이런 시도 있었네?

  8. 첫 눈이 내렸는데...

  9.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10. 고향은 늘 마음 속에

  11. 다시 태어나는 詩

  12. 신작 찬송가 발표회가...

  13. 불 타는 단풍

  14. 찬양 정기공연을 앞두고…

  15. 8월 15일과 나

  16. 팜 스프링스의 열기는 참으로 뜨거웠다

  17. 문학에 대한 열정이 좋은 작품을 낳는다

  18. 어떤 진실 게임

  19. ‘부부의 날’이 지나간다

  20. 어머니 날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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