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2015.08.17 11:44

팔불출八不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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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八不出

  오정방
  

털고 훔치고 씻고 닦고 말리고 문지르고
썰고 짜르고 찢고 까고 뽂고 찌고 데치며
남달리 부엌에 있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즐겨보는 티비 프로는 단연 요리강습이다
무슨 요리, 어떤 음식이던
한 번 티비에서 보고 들은 것은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요리강사가 빛좋게 만든 음식이야
먹어보지 못해 맛을 알 수 없지만
삼십년 이상 입맛이 길들여진 탓인지
아내가 만든 음식은 다 정갈하고 맛있다
오늘 저녁메뉴는 며칠 전 티비에서 본 돈까스
먹음직도 하고 맛있음직도 하여
식사기도를 서둘러 끝내고 칼질을 한다
한 입 베어 물고 ‘음, 베리 굳’
하고 얼굴을 쳐다보며 칭찬을 하는데
아내의 흡족한 미소가 얼른 눈에 들어 온다
저녁식사는 소식, 또는 건너 뛰든가
아니면 아예 과일로 떼우기로 해놓고는
오늘도 새로운 메뉴 때문에 파계해 버렸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아내 복은 타고 났다
간 작고 팔불출이래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은
그래서 부부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해본 나를
가까이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임에야

                            <200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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