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2015.09.10 09:16

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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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

  오정방
  

  
점심 식탁에 방금 구운 꽁치 세 마리 올라왔다
두 마리는 내 몫이고
한 마리는 자기가 먹을테니
따끈할 때 드시라며 아내가 웃음으로 권한다

꽁치라면 먹는데 익숙할 뿐 아니라
나는 아주 이골이 나있기까지 하다
뼈를 하나 하나 발릴 필요도 없이
서울 출신 아내가 보란듯이
자신있게 뼈 채 한 입 뭉텅 베어 먹는다

나 어릴 적 어느 해 고향 경상도에
가뭄으로 농사는 흉년이 들었어도
동해바다 꽁치는 눈이 멀었는지
길을 잘못 들었었는지 아니면
흉년을 잘 이겨내라는 배려였는지
가난한 어부들에게 선심 차원에서
얼마나 많이 많이 투항?주었던지

쌀이 귀하고 그래서 밥도 귀한데
꽁치는 풍년이라 너무나 흔해서
구워도 먹고
튀겨도 먹고
끓여도 먹고
삶아도 먹고
쪄서도 먹고
삭혀서도 먹고
쌀 알은 별로 잘 보이지도 않는
꽁치밥에 또 꽁치죽에
그까짓 비린내 정도는 아랑곳 없이
아침 저녁 질리게도 먹어보았던 꽁치

그 무렵 다 잡혀 멸종한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서 그 몇 대 후손들이
넓은 태평양을 활개치며 다니다가
어느 날 어느 손에 곱게 잡혀와
오늘 내 입에서 이렇게
아린 추억과 함께 잘강 잘강 씹히는가?

< 200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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