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대에게 (1) / 홍인숙(Grace)
오늘 10월의 마지막 날, 첫 비가 내렸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비는 겨울의 시작입니다.
오늘 맞은 할로윈 데이를 기점으로
댕스기빙 데이와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곧바로 연말을 향한 빠른 행보를 하게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올 한해를 다 보낸 듯
가슴 휘휘 도는 바람소리가 더욱 공허합니다.
올해는 제게 참 특별한 해였습니다.
오랜 날 내 안에서만 비밀스레 지내온 제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가
봇물이 터지듯 밀려오는 사람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냈습니다.
봄꽃들이 타다닥 함성지르며 봉우리를 터트리듯
환희스런 일도 있었지만
서툰 사람들과의 관계로 하얗게 밤을 밝힌 날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세상에 돌출되어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로 경황이 없을 때
건강이 안 좋으신 아버지를 곁에 모시면서
아버지의 그윽한 눈빛 가득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정신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한 섭리로 저를 선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비가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면
낙엽은 더욱 구성진 소리로 몸을 떨구고
떨어진 낙엽들은 빗물에 잠겨 기약없이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이제는 가을 서늘한 바람처럼 가슴에 남아있는 아픈 기억들을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아물리며 11월을 맞이하여야겠습니다.
오늘은 더욱 더,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대가 그립습니다.
2003. 10. 31
그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