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21
어제:
15
전체:
458,225


수필
2016.11.10 07:56

최선을 다하는 하루 

조회 수 112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최선을 다하는 하루  /  홍인숙(Grace)
    

  

며칠 더위가 계속 되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나날을 보냈다.
내 특유의 게으름이 일조를 하였지만, 그건 분명히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 더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하루 미루어 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남편을 위해, 아침부터 오이냉국을 준비하느라 채칼을 사용하다 그만, 손가락을 다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니 왜 그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지.. 그동안 미루어 왔던 일들이 한꺼번에 다 하고 싶은 욕망으로 밀려오는 것이었다.
진작에 해 둘 것을...후회가 되었다.

오래 전, 적지 않은 돈으로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장만하고는 한가할 때를 기다리며 책장에 꼽아 두었었다. 이제 비로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기다리던 때가 되었다고 마음을 먹고 책을 펼치니 어느새 시력이 떨어져 자유롭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만 때를 놓친 느낌이다.

우리의 삶도 매일을 보장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때를 기다리다 영원히 그 때를 잃어버리지 말고 하루하루 나의 건강과 여건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 하여야겠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매일 주어진 깨끗한 백지 앞에 마주 선 것과 같다고 한다. 게으르게 흰 종이 그대로 하루를 접는 사람과, 그 백지에 여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람있는 삶으로 꽉 채우는 사람 중, 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깝게 버린 흰 종이가 얼마나 쌓였을까 새삼 나의 게으름이 부끄럽다.

내일은 희망이다.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다. 분명 그 내일이 있으므로 오늘의 역경도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무모하게 내일에 의존하다가 자칫,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반성하며 살 때에 더욱 보람있는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리라.

우연히 다친 손가락이 잊고 있었던 진리 하나를 깨닫게 해준 하루,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새로운 흰 종이를 장식할 것인가.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601
45 수필 어거스틴의 참회록 홍인숙(Grace) 2004.08.17 1284
44 수필 아침이 오는 소리 홍인숙(Grace) 2016.11.07 124
43 수필 아이들을 위한 기도 홍인숙(Grace) 2016.11.07 229
42 수필 아버지의 훈장(勳章) 홍인숙(Grace) 2016.11.07 64
41 수필 아버지와 낚시여행 홍인숙(Grace) 2004.09.15 1019
40 수필 슬픔대신 희망으로 홍인숙(Grace) 2016.11.07 46
39 수필 슬픈 첨단시대 홍인숙 2004.07.31 903
38 수필 소통에 대하여   6 홍인숙(Grace) 2017.01.12 380
37 수필 소나기  1 홍인숙(Grace) 2016.11.10 119
36 수필 새봄 아저씨 (2) / 아저씨는 떠나고... 홍인숙 2003.05.31 927
35 수필 새봄 아저씨 (1) 홍인숙 2003.05.31 758
34 수필 삼월에 홍인숙(Grace) 2016.11.07 135
33 수필 삶의 물결에서                                                               3 홍인숙(Grace) 2016.11.10 147
32 수필 삶 돌아보기 홍인숙 2003.12.02 869
31 수필 사이 가꾸기 홍인숙(Grace) 2020.10.04 213
30 수필 사월이면 그리워지는 친구 홍인숙(Grace) 2016.11.07 65
29 수필 사랑의 편지 홍인숙(Grace) 2016.11.07 76
28 수필 사랑의 열매 홍인숙(Grace) 2016.11.07 75
27 수필 비워둔 스케치북  1 홍인숙(Grace) 2016.11.14 104
26 수필 박 목월 시인님 홍인숙(Grace) 2016.11.07 9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