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139
전체:
1,293,321

이달의 작가
2010.10.26 04:18

아버지 '었'

조회 수 114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버지 '었'/오연희



영이 떠난 몸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섬뜩할 만큼 차가운 턱
“이마도 만져보고 볼도 만져보고 그러세요”
저승사자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젊은 장의사의 한마디
마음속도 꿰뚫는 영험함에 놀라 모두들 슬며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생의 기운 드나들만한 구멍이란 구멍 모두 무명으로 채우다가
틀니 안 하셨섰..었...어요? 의아한 듯 묻는 장의사
(과거완료 ‘었’ 을 강조하느라 말을 더듬는다)
입맛이라도 쩝쩝 다시면 큰일이라는 듯 여지없이 틀어막는다
안 했어요. 느직하게 뒷북 둥, 울리는 엄마얼굴이 살짝 환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 태평양 건너 당신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찌어찌
알아들은 마지막 말, 딸들을 황망하게 했던
아 아, 아버지 불속으로 드시는구나
앗 뜨거! 앗 뜨거!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동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어린 딸을 앞세운 어느 엄마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벌떡거리는 몸 애써 붙잡는 사람들의 손에는 소주잔이 돌아가고
오래 곁을 지켜온 딸들은 합죽한 아버지 웃음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

회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족하시던
(당신이 한 게 뭐 있소? 타박소리 타작하듯 해대도 어허-,
외아들 눈감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어 매정한 양반이라는 소리 들어도 어허-,
헛기침만 뱉으시던) 아버지
하늘과 땅 가지 못할 곳 없으시겠다
“한 달음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좋겠수!” 엄마의 마지막 핀잔에
어허-
벌떡 일어셨..섰...었겠다.



-미주문학 2011 가을호-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7 1 오연희 2006.06.08 809
196 통마늘 1 오연희 2006.08.09 819
195 토마토 수프 5 오연희 2016.12.20 239
194 1 오연희 2006.07.13 1072
193 침묵속으로 오연희 2004.02.27 666
192 축제, 그 다음 오연희 2007.06.27 851
191 추천 오연희 2010.06.08 1175
190 추석단상 5 오연희 2004.09.25 726
189 첫사랑처럼 오연희 2004.08.09 786
188 창세기 1 오연희 2005.03.03 672
187 창밖을 보며 오연희 2004.11.10 768
186 오연희 2006.08.09 740
185 짝사랑 오연희 2003.09.08 701
184 짜장면을 먹으며 1 오연희 2005.04.08 960
183 1 오연희 2010.03.05 1255
182 진실 1 오연희 2005.10.05 847
181 지진, 그 날 1 오연희 2008.08.01 1340
180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고 싶다 오연희 2004.08.26 782
179 지문을 찍으며 1 오연희 2006.08.09 675
178 지구에 등불 밝히다 오연희 2013.08.15 42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