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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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칙폭폭….'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동요이다. 칙칙폭폭 소리 자장가 삼아 아기는 자고 칙칙폭폭 장단에 옥수수가 자라는 기차길 옆에 살지는 않았지만, 기찻길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철로 위를 걷다가, 철로에 엎드려 귀를 가만히 대고 있으면 멀리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그 두려움과 설렘이라니….

우리의 놀이터였던 기찻길에 안전사고가 잦아지자 기찻길 위로 구름다리가 놓였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철로는 먼 데서 오신 손님처럼 서먹했다. 길게 연기를 뿜으며 사라져가는 기차를 바라보다가 눈길 머문 저 멀리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느꼈던 아련함, 기차 소리가 들리면 되살아나는 그리움이다.

한국 기차는 정말 빠르다. 완행을 타도 창밖의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빠른 속도 때문인지 대부분의 기찻길은 동네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도 빠르게 달리는 앰트랙(Amtrak)도 있고, 100 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달고 느린 속도로 대륙을 달리는 화물열차도 있다. 동네를 벗어나 있는 이런 기찻길도 있지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 길과 길 사이, 길을 따라, 심지어 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기찻길도 있다. 나는 길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자주 지나다니는 편이다. 딩딩딩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 꼼짝마라, 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길을 막았으면 후딱 지나가든가. 기차의 움직임이 굼뜨다 싶더니 아예 꿈쩍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몇 대의 차가 방향을 되돌려 빠져나가고 있다. 나 역시 저렇게 되돌려 다른 길을 찾아간 적이 있기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급한 마음 때문에 기차가 막고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그렇지 사실은 몇 분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기다렸다. 마음 급한 사람들은 거의 되돌아가고, 되돌아가던 차가 길이 없으니 다시 돌아오고 그러는 사이에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딩딩딩 소리와 함께 길은 다시 뚫렸다. 차의 물결이 다시 출렁인다.

천천히 가속기를 밟으며 이 철길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생각한다. 두 개가 나란히 놓여 비로소 길이 되고 땅에 바짝 엎드려 제 몸을 발판삼아 지나가는 기차의 무게를 받아내는 철로, 완강하면서도 변치 않는 절개가 느껴진다. 그러나 신문이나 군수품 혹은 석탄 수송처럼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철로, 또한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용도가 폐기되고 있는 철로가 늘고 있다는 한국 소식이 떠올라, 오늘 건너온 철로가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철로에는 잃어버린 시간이 담겨 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아, 칙칙폭폭 소리에 잘도 자던 아기는 어떻게 자랐을까? 잘 자란 그, 혹은 그녀도 기찻길을 지나며 마음속의 오막살이, 때로 초라하고 슬프지만,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201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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