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23
어제:
35
전체:
1,293,587

이달의 작가
수필
2015.07.06 16:05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조회 수 29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벽 예배 가는 이른 시간, 철로를 끼고 있는 동네 큰길 가에 유럽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서로를 보듬으며 서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상황이지? 이 새벽에? 갸웃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연달아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자세의 그들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새벽에는 우산 속 꼭 껴안은 채였는데 그 모습이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워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두었다.

눈 뜨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아니 꿈속까지 한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 그들의 사랑도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 같다. 무지갯빛 미래를 기대하며 결혼행진곡에 발맞춰 들어갔는지 혹은 갈 예정인지 모르지만, 서로를 향해 연연하는 첫마음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쓰면 한 줄 밖에 안되는 결혼생활인데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것, 요즘 부쩍 실감한다.

흔히 '인생에서 피해야 할 3가지'로 초년 성공, 중년 상처, 노년 빈곤을 든다. 그중 중년 상처는 배우자의 죽음과 이혼이라고 하는데 죽음이야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화합을 이루지 못해 깨지는 가정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최근 몇 년 사이 가까운 지인 중에 이혼한 가정이 몇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정했던 순간들을 삭제 버튼 하나로 끝낸 것 같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 또래 이웃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이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라며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알고 있는 말인데도 그날따라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아들 내외가 헤어져 손자 둘을 맡아 키웠다는 이웃 팔순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들 좋아서 결혼했고 자식 낳았으면 어쨌든 책임져야지, 노기 띤 음성에 아들을 향한 원망이 가득 배어났다. 하지만 곧이어 손자 자랑이 늘어지셨다. 돈 한 푼 안 받고 끝까지 다 들어드렸다.

오래 전 이휘향이라는 탤런트가 출연한 드라마가 있었다. 극 중 이휘향이 결혼을 앞둔 조카에게 들려주는 대사 중에 '결혼생활, 마음에 맞으면 얼마나 좋은데'라는 말이 있었다. 평범한 그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고 대사에 딱 맞는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화사한 표정은 또 얼마나 실감이 나던지. 사실 그 대사는 드라마 작가의 결혼에 대한 일가견임을 알지만, 아무튼 그 후 나는 이휘향의 팬이 되었다.

'우산 속의 연인'이라는 내가 만든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사랑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낭만은 줄어들고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이 반감된다 할지라도, 이 지구 상에 당신이 있어 정말 좋다는 고백과 함께 깊은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세월이 더 지나 황혼빛 뉘엿뉘엿 질 쯤이면 두 손 꼭 잡고, 철길 따라 흐르는 큰길 가에서의 뜨거웠던 새벽을 회상하며 천천히 공원을 거니는 먼 훗날의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6/23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 수필 [이 아침에] 내 이름을 불러보자 오연희 2013.02.15 826
56 수필 [이 아침에] 선물을 고르는 마음 오연희 2012.11.27 668
55 수필 [이 아침에]다시 듣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연희 2012.11.27 887
54 수필 [이 아침에]꽃 가꾸거나 몸 가꾸거나 오연희 2012.10.25 614
53 수필 자식 결혼과 부모노릇 오연희 2012.10.25 603
52 수필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오연희 2012.09.23 868
51 수필 겁쟁이의 변명 1 오연희 2012.09.23 757
50 수필 신선하고 재미있는 문화 오연희 2012.09.04 589
49 수필 이민의 삶이 어때서요? 오연희 2012.09.04 686
48 수필 공공 수영장의 백인 미녀 1 오연희 2012.08.10 1031
47 수필 모전자전 오연희 2012.07.26 678
46 수필 바탕이 다르다, 는 것에 대하여 1 오연희 2012.07.12 674
45 수필 고흐의 '밀밭'을 벽에 걸다 오연희 2012.07.12 1174
44 수필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오연희 2012.06.13 1179
43 수필 쥐뿔도 없지만 오연희 2012.05.25 990
42 수필 칠흑 같은 밤길의 동반자 오연희 2012.05.04 858
41 수필 좋은 이웃 찾기, 내 이름 찾기 오연희 2012.05.04 877
40 수필 절제의 계절 오연희 2012.05.04 771
39 수필 샤핑 여왕의 참회록 오연희 2012.03.20 674
38 수필 시(詩)가 흐르는 서울 오연희 2012.03.20 6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