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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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엄마의 막중한 책임을 끝낸 막내 여동생이 셋째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왔다. 일단 우리 집에 짐을 부려놓고 운전을 해서 가든 여행사로 가든 네 자매가 함께 어디든 떠나자 했는데, 사정이 생겨 합류하지 못하게 된 언니로 인해 갈까 말까 고민 끝에 결정한 미국행이다.

미국에 사는 내가 다 알아서 챙겨야 할 일인데도 대장인 언니가 빠지니까 둘째인 내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동생들을 데리고 미리 세워놓은 일정을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저녁이면 뒷마당의 로스메리를 따다 차를 끓여 마시며 하염없이 나눈 이야기들, 독특한 향기만큼 독특한 삶의 사연들, 진심 어린 염려가 있었고 마음 축 늘어트린 편안한 웃음이 있었다.

대학 진학상담 고등학교 교사인 셋째의 주제는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것이다. 방학도 있고 보너스도 있고 퇴직하면 연금도 괜찮고 그래도 학교 선생이 안정적이잖니? 한마디 던졌다.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걸려있으니 책임이 무겁고 주위의 기대치는 높고, 몇 년마다 전근해야 하므로 가족과 헤어져 사는 기간이 많고, 과중한 업무로 몸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생들의 일반 생활상담도 겸하고 있는데 그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학생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나면 그들의 고통이 자신에게 전이되어 끙끙 앓기도 한다는 것이다. 보람도 적지 않아 정년까지 가보려는 마음도 있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다.

우리 네 자매 중 가장 기대주였던 막내의 의외의 취미 생활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탤런트 문채원의 광팬인 막내, 기왕이면 남자 배우를 좋아하지 웬 여자냐? 며 킥킥댔더니 그래서 자기 남편도 자신의 취미 생활에 전혀 불평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달려가더니 뭔가를 가지고 나온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 문채원이 참 좋다'라는 제목의 탁상 달력이다.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인데 나한테 주려고 미국까지 챙겨 온 것이다.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연기대상 인기상을 받는데 일조를 하기 위해 집안 식구까지 동원하는 막내. 셋째 언니 이름은 이미 팬 명단에 들어가 있다, 이름을 살짝 빌려 썼던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가 '뜨거운 밤에…' 어쩌고 하는 전화 메시지가 왜 자꾸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문채원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착한 남자'를 꼭 보라며 나에게 신신당부하는 등등 문채원의 팬 역할에 열심인 막내 때문에 많이도 웃었다.

3주가 꿈과 같이 지나고 그들이 현실로 돌아가는 날, 세 명이 가능할 때는 막내가 준비되지 않고, 막내가 날개를 달자마자 언니가 사정이 생긴 것을 보며 실현 가능성이 멀어 보이지만, "우리 네 자매 돈 모아서 여행가자!" 열성당원 구호와 같이 또 외쳤다.

미국은 한 명소를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차를 운전해 가야 한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나무 한 그루도, 끝없이 이어지는 삭막한 사막의 모습도, 낯선 곳에서 먹는 점심 한 끼도 모두 여행의 한 부분이 듯,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네 자매 함께하는 여행' 그 꿈의 명소를 향해 우리는 지금도 가는 중이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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