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33
어제:
7
전체:
1,292,305

이달의 작가
조회 수 155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0대로 보이는 앳된 여자아이가 춤을 춘다. 동네 공원 초록 잔디 위에서 친구인지 선생님인지 모르지만 대여섯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도취된 듯 너울너울 춤을 춘다. 춤추는 자태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배워서 잘하는 몸짓이 아니라 몸 속에 춤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길거리든 차 속이든 자연스럽게 몸이 출렁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춤이 생활화 된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삶의 유연성이 느껴진다. 요리 잘하는 사람, 말솜씨 좋은 사람, 자전거 잘 타는 사람 모두 부럽지만 춤 잘 추는 사람이 나는 조금 더 부럽다.

춤의 영어 낱말인 댄스의 어원은 '생명의 욕구'를 뜻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가 리듬을 타는 것이니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겠다. 친구들과 춤이 있는 불빛 휘황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내 몸짓이 어색하게 느껴져 쭈뼛대다 나왔던 기억이 찜찜하게 남아있다. 춤이 양성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춤추고 싶은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던 친구가 있었다. 끼. 요즘엔 예술가 기질로 봐 줬을 텐데 그때는 부정적인 의미가 다분했다. 그렇든 말든 제 감정을 자연스럽게 분출하던 그 몸짓이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우리 아이들도 춤추는 데 별로 소질이 없어 보인다.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아 그나마 다행이다. 한인이 드문 애리조나 시골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우리 아이들은 바이올린과 함께 미국 문화를 좀 더 가까이 접할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혹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학교와 교회, 박물관, 극장, RV 파크 ,공원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성격의 연주회를 가졌다.

조금 큰 도시인 샌디에이고로 이사 와서도 아이들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일일이 차편을 해결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이 샌디에이고 유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 활동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발보아파크 클럽하우스였는지 다운타운의 어느 유서 깊은 호텔이었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비엔나의 어느 밤(A Night in Vienna)'이라는 댄스 공연을 위한 연주회가 있었다.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운 커플들, 미 전역에서 모여든 댄서들이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서양 영화에서나 보았던 댄서들의 화려한 의상도 눈부셨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엔나 왈츠에 맞춰 춤추는 광경은 정말 황홀할 지경이었다.

왈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니 춤도 살고 음악도 살아났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TV 화면 속의 연예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럽 어느 황실 대관식 파티에라도 참여한 듯한 생생한 설렘이라니. 댄스에 대한 환상을 지울 수 없어 에어로빅과 포크 댄스 같은 생활체조에 발을 들여놔 봤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막막함에 일찌감치 손들고 말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귀히 여기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여자 아이의 모습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나만의 것을 찾아 몰두하고 싶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4.21

?
  • Chuck 2016.05.19 04:51
    "요즘 하는 일은/ 주로 바라보는 일// 미워하거나 화내지도 않고/ 탓하거나 서운해하지도 않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좀 뒤로 물러서서/ 바보처럼 바라보거나/ 그저 듣기만 하는 일// 아니면 가을 밤에 가랑잎 굴러가듯/ 덧없이 떠나가는 것들을 향해/ 사랑과 연민의 눈길로/ 용서와 감사의 미소로/ 석별의 손을 흔들어 주는 일로 나도 그나이가 되면 채희문 (76세) 시인의 요즘일과에서 처럼
    상념의 시간이..

    그래서 화가 '고호"의 일기처럼

    1874, 1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https://www.youtube.com/embed/saC7AyalPmc"
  • 오연희 2016.05.27 02:57
    최무열 선생님 올려주신 댓글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선생님은 글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분이시니
    자신의 글을 한번 정식으로 써 보심도 좋을 것 같아요.
    늘 홧팅에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7 수필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오연희 2015.07.11 203
136 수필 쉽지 않은 시간 후에 오는 5 오연희 2018.02.21 218
135 수필 미국에서 꿈꾸는 '지란지교' 오연희 2015.07.06 223
134 수필 아름다운 마지막 풍경 6 file 오연희 2017.10.23 230
133 수필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4 오연희 2017.03.14 231
132 수필 추억은 힘이 없다지만 2 오연희 2015.11.25 232
131 수필 [이 아침에]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이 12/19/2014 오연희 2014.12.30 236
130 수필 찾지 못한 답 오연희 2014.10.24 238
129 수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낙서' 오연희 2016.03.12 247
128 수필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248
127 수필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능력 2 오연희 2017.09.25 262
126 수필 파피꽃 언덕의 사람향기 12 file 오연희 2017.05.01 267
125 수필 태극기도 촛불도 '나라 사랑' 15 오연희 2017.02.22 271
124 수필 흠뻑 빠졌던 책 한 권 - '외로운 여정' 3 오연희 2017.07.05 279
123 수필 아주 오래된 인연의 끈 오연희 2015.07.06 290
122 수필 [이 아침에] 우리 인생의 '하프 타임' 7/2/14 1 오연희 2014.07.17 291
121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291
120 수필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시간 오연희 2015.07.06 293
119 수필 애리조나, 영국, LA에 살아보니 오연희 2015.07.06 300
118 수필 북한 억류 선교사를 위한 기도 편지 오연희 2015.08.21 30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