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7
전체:
1,292,281

이달의 작가
수필
2008.08.22 08:24

야박한 일본식당

조회 수 157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의 집 근처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우동집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몇 번 간적이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갈 때마다 보게 됩니다.
저는 보통 런치스페셜 1번을 주문합니다. 우동과 튀김 그리고 몇 종류의 단무지가 정갈하게 담겨있는 벤또입니다. 풍성한 느낌은 안 들지만 담백하니 맛이 괜찮습니다. 보통 외식을 하고 나면 찬물을 마구 들이키곤 하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그런 증세가 별로 없습니다. 이웃 분이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일거라고 일러줍니다. 음식가격이 그리 싼 것도 아니고 위치가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닌데 늘 그렇게 손님이 붐비는 것을 보면 역시 음식은 ‘맛’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저녁 바로 그 식당을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제가 속이 좀 거북해서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었거든요. 진짜 맛있다’고 남편에게 몇 번 강조한 뒤 저는 뎀뿌라 우동을 남편은 닭고기 우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동 한그릇만 달랑 나왔습니다. 김치대용이 될 만한 단무지 같은 것이 당연히 나오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줄 낌새가 아니었습니다. 우동이 반쯤 없어진 뒤에야 대충 감이 잡혔습니다. '단무지 좀 주세요' 그제서야 부탁했습니다. 왔다갔다 분주한 저 웨츄레스 도무지 소식이 없습니다. '김치좀 더주세요’ 하면 총알같이 가져다 주는 한국식당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참다못해 저희 테이블을 담당하던 웨츄레스가 보이길테 ‘단무지…’하고 힌트를 줬습니다. 오더 해 놓았다며 일본여성 특유의 그 상냥한 웃음을 흘리고는 그만이었습니다. ‘오더?’ 단무지 하나를? 아…..그제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그전에 몇 번 갔지만 그때마다 다른 분이 음식값을 내서 단무지 하나도 음식값에 추가되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만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우동이 식든지 말든지 아주 천천히 먹었습니다. 거의 몇 가락 남았을 즈음 무려 4불이나 하는 단무지가 나왔습니다. 커다란 종지에 느슨하게 잘라놓은 단무지를 먹으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우동하나를 시켜도 김치나 깍두기정도는 따라서 나오고, 혹시 먹다가 모자라면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당연히 더 주는 한식당의 풍성함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풍성해 버리는 것 또한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
일본인의 정갈함과 친절 그리고 야박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먹을 만치만 주문하도록 하는 음식문화 우리의 풍성한 식당문화와는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매콤한 신라면에 시큼한 총각김치나 와작 깨물어 먹어야겠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7 수필 좋은 이웃 찾기, 내 이름 찾기 오연희 2012.05.04 875
136 수필 칠흑 같은 밤길의 동반자 오연희 2012.05.04 858
135 수필 쥐뿔도 없지만 오연희 2012.05.25 990
134 수필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오연희 2012.06.13 1179
133 수필 고흐의 '밀밭'을 벽에 걸다 오연희 2012.07.12 1174
132 수필 바탕이 다르다, 는 것에 대하여 1 오연희 2012.07.12 674
131 수필 모전자전 오연희 2012.07.26 678
130 수필 공공 수영장의 백인 미녀 1 오연희 2012.08.10 1029
129 수필 이민의 삶이 어때서요? 오연희 2012.09.04 684
128 수필 신선하고 재미있는 문화 오연희 2012.09.04 588
127 수필 겁쟁이의 변명 1 오연희 2012.09.23 757
126 수필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오연희 2012.09.23 867
125 수필 자식 결혼과 부모노릇 오연희 2012.10.25 603
124 수필 [이 아침에]꽃 가꾸거나 몸 가꾸거나 오연희 2012.10.25 614
123 수필 [이 아침에]다시 듣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연희 2012.11.27 887
122 수필 [이 아침에] 선물을 고르는 마음 오연희 2012.11.27 668
121 수필 [이 아침에] 내 이름을 불러보자 오연희 2013.02.15 825
120 수필 [이 아침에] 엄마표 '해물 깻잎 김치전' 오연희 2013.02.15 994
119 수필 [이 아침에] 잘 웃어 주는 것도 재주 오연희 2013.02.15 670
118 수필 [이 아침에] 주인공 아니어도 기쁜 이유 오연희 2013.02.15 55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