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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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갈 것도 또 사올 것도 없다고 하지만 오랜만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무엇을 사갈까 적잖은 고민이다. 비싼 명품 척척 갖다 안기면 좋지만 그럴 마음도 그럴 형편도 아니다. 생각만 열심히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집 가까이 있는 몰에 나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가끔 사용하던 화장품 메이커 부스에 들렀다. 낯선 판매원이 일정금액의 화장품을 사면 공짜선물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 사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녀의 태도에 신뢰감이 느껴져 며칠 후 그곳에서 화장품을 샀다. 돈 주고 산 화장품도 좋지만 선물이 정말 알차다.

온 김에 2층으로 올라가 양말과 스타킹을 몇 개 골랐다. 돈을 지급하려는데 캐시어가 다음 주 수요일부터 25% 세일에 들어가는데 돈은 지금 세일값으로 지급해 놓고 세일하는 날 찾아가면 된다고 일러준다. 아무 말 안 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제 값 주고 샀을 텐데 싶어 괜히 고맙다.

오래 전 한국에서 옷을 살 때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옷을 사기전에 으레 세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우리는 잘 몰라요. 없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세일할 때면 이런 옷은 안 남아요. 치수가 없어서 못 팔아요. 그냥 사시죠" 이렇게 대답한다. 그 말을 믿고 옷을 샀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세일이었던 적이 있었다. 기가 막혀서 옷 들고 가서 차액만큼 환급해 달라고 따졌다. 그러면 또 하는 공식 멘트가 있다. "우린 정말 몰랐어요. 회사 방침이 그러니까요."

환급은 절대로 못 해주겠다고 하지만 사납게 따지는 사람들에겐 환급해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트렸다.

재작년 한국 갔을 때 딴 세상에 온 것처럼 황홀했던 한 백화점의 전경이 떠오른다. 손님을 대하는 판매원들의 태도는 또 얼마나 정중하던지. 진열된 상품가격에 기가 질려 살 엄두는 못 냈지만 서비스는 놀랍게 달라진 것 같다. 그런데 저렇게 비싼 제품 사 가지고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나? 너그러운 미국의 반품문화에 길든 탓인지 혼자 걱정을 해 보았다.

국민성과 전통과 처해있는 사회 환경이 달라서 어느 나라의 상거래 문화가 좋다 아니다 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 사는 사람들은 미국 문화가 편안할 것이고 한국사는 사람들은 한국문화가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한국도 미국처럼 공짜선물 날짜나 세일 기간을 미리 알려주고 반품도 쉽게 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반대로 미국도 한국처럼 선물기간이나 세일 날짜를 말해주지 않고 반품도 어렵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 본다. 미국 판매 문화가 참 허술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연말이 지나고 나면 반품하는 여자옷 특히 파티복이 부쩍 많아진다는 말을 어느 분에게 듣고보니 좋은 제도를 악용하는 소비자도 생기는 모양이다.

아무튼 난 그녀들의 조언으로 공짜선물도 챙기고 양말과 스타킹도 싸게 샀다. 그런데 화장품 사러 다시 가고 양말 스타킹 픽업하러 간 김에 또 다른 물건을 샀다. 상술에 내가 넘어간 것 같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3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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