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8
어제:
12
전체:
1,292,770

이달의 작가
조회 수 43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 집 마당과 바로 옆집 수영장은 나무 담으로 경계가 지어져 있다. 옆집의 수영장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 올 때면 정답게 동네를 산책하던 그 댁 부부의 환한 표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는데 그들 부부가 갈라섰다는 소문이 들린다. 얼마 후 집이 세일로 나오고, 새 주인이 이사를 들어오고, 집들이를 하는지 그 집 앞에 차들이 우르르 모여드는가 싶더니 악기까지 동원해서 노는지 웅웅대는 소리로 온 동네가 진동을 한다. 수영장에서는 다시 풍덩거리며 떠들어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지만 전 주인 부부의 행복과 갈등의 순간들을 상상하며 안타까이 그집 창을 바라본다.

무슨 사연일까 그런 결단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가도 미국사람들은 우리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헤어진 후에도 서로 왕래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를 몇 번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거의 못 알아듣는 내 영어실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저런 동네 소식을 들려주던 그 남자도 말끝에 지금 자기 집에 '엑스 와이프' 가 와 있다고 했다. 너무도 생소했던 단어 '엑스 와이프'. 대충 감은 잡혔지만 설마 싶어 대화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전의 아내'란다. 헤어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그렇단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우리 가족이 LA로 이사 왔을 때다. 우리 집 두 집 건너 사는 남자가 집 앞을 지나가다가 이삿짐을 옮기는 우리를 보고 먼저 알은척을 했다. 자신의 이름과 직업 등등 이런저런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더니 역시 이야기 끝에 자신의 엑스 와이프가 바로 옆 동네에 산다고 한다.

두 남자 모두 그 말을 얼마나 예사스럽게 하는지 '저어기 우리 딸이 사는데' 그런 말투다. 그 후로도 몇 번 비슷한 경우를 목격하며 우리와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흔히 정서가 달라서 라고 한다. 정서란 무엇일까? "정서란 인지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 의해 달라지는 주관적 경험이나 느낌인데 유기체 내외의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반응으로서 대상에 대한 행동 경향성이다. 대개 감정 기분 기질 성격 생각 행동과 관련된 정신적. 생리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대체로 좋을 때만 '우리'인 우리의 정서로는 헤어져도 '우리'인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부부의 연은 끝나도 '자식이 있으니까' 혹은 사랑은 끝나도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혹은 윗세대부터 내려온 익숙한 감정 이라는 의견을 내는 분도 있지만 모두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상처를 남긴 사람들끼리 가능하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사람의 심리일 것이다. 각자의 길로 떠나버린 옆집 부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엑스(Ex)'라는 말을 앞에 붙인 새로운 '우리'가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른 정서에 대해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3.5.28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7 수필 꿈같은 인연 그리고 만남 6 오연희 2018.06.14 382
96 수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오연희 2015.07.06 146
95 수필 나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아름다움 2 오연희 2016.05.19 155
94 수필 남가주에서 꿈꾸는 '가을비 우산 속' 2 오연희 2016.11.09 648
93 수필 내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내려놓음' 오연희 2008.05.24 1326
92 수필 냉장고 정리와 마음 청소 오연희 2015.12.11 353
91 수필 너무맑아 슬픈하늘 오연희 2003.09.17 1209
90 수필 눈치보기 1 오연희 2008.08.22 1339
89 수필 다람쥐와 새의 '가뭄 대처법' 오연희 2015.07.29 343
88 수필 다시, '존 웨인'을 찾아서 2 오연희 2022.03.08 93
87 수필 독서, 다시 하는 인생공부 오연희 2015.10.21 166
86 수필 동거-결혼-이혼 오연희 2003.08.08 974
85 수필 동정과 사랑 사이 6 오연희 2017.05.12 178
84 수필 두 개의 생일 기념 사진 오연희 2022.04.05 120
83 수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낙서' 오연희 2016.03.12 247
82 수필 드라마 '도깨비'에 홀린 시간 4 오연희 2017.01.31 316
81 수필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오연희 2015.07.11 203
80 수필 러미지 세일/꽁트 8 오연희 2004.10.21 1443
79 수필 레나 마리아/봉사의 힘 1 오연희 2007.12.03 2118
78 수필 렌트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4 오연희 2016.08.25 9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