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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관객 수가 엄청나다고 광고를 해대면 은근히 궁금해진다. 나처럼 귀가 솔깃해 있는 지인들과 함께 영화관을 가기도 하고, 기회를 놓쳐 인터넷으로 볼 때도 있다. '역시 잘 만들었네!'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취향 탓인지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아무튼 사람들의 대화에 많이 오르내리는 영화를 보고 나면 미뤄둔 숙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하다.

한창 인기 있는 젊은 배우들을 보면 정말 눈이 호강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멋진 남자 혹은 예쁜 여자가 많은 거야, 시샘 어린 투정도 해본다.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를 보는 것도 즐겁다. 저 배역에는 저 사람이 딱이야, 손뼉을 치고 싶을 만큼 실감이 난다.

한때 주인공 자리를 독차지하던 배우가 비중이 약한 조연을 맡아서도 열성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더 이상 젊은 역할은 힘들 것 같은 그들을 보면 세월 지나가는 소리가 휙휙 들린다. 그들의 모습 속에 우리도 보인다. 우리 역시 배역의 이동 시기가 도래했음을 깨닫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메모할 때가 있다. 요즘의 세태를 대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도해 나가기도 하는 기발한 대사에 감탄과 우려의 마음을 가져보기도 하고, 인생의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작가의 사상에 매료될 때도 있다.

화면 속이든 실제 생활에서든, 나이 지긋한 어른을 대하면 몇 해 전 우연히 보게 된 한 영화 속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구절인데, 말의 진실 여부를 떠나 참으로 서글펐던 기억이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파격적인 베드신이 이슈가 되었다는 '은교'라는 영화인데, 원작자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박범신이다.

"젊음은 미모와 무관하게 광채가 난다" "청춘은 젊은이의 것이 아니라 늙은이의 눈에만 보이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 인터뷰에서 고백한 박범신은 '은교'를 쓴 후 "조금은 젊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훌륭한 작가로 인해 혹은 출연한 배우의 열연으로 영화는 살아난다. 그런데 배우의 실제 삶에서의 숭고한 인간미로 인해 다시 살아나는 영화도 있다. '로마의 휴일' 속의 앤 공주!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지만, 방황하지 않고 헛된 꿈을 꾸지 않고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 오지의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다간 세기의 미인 오드리 햅번을 첫 번째로 꼽아본다.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아들에게 주었다는 유언 같은 어록이 그녀의 배우 시절의 깜찍한 모습과, 사랑의 화신으로 살아가는 나이 든 모습과 함께 마구 퍼져나가고 있다.

그녀의 어록 리스트 중에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이 들어감에 연연할 틈조차 없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한 생애가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로마의 휴일'.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 눈부실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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