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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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에세이
2006.01.04 06:12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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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봄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學)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가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악수.



*  *  *  *  *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저려온다
그는, 그의 생애와 시세계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인 것 같다.

일제하에 많은 젊은 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 힘겹게 보낼 때, 고향에서 송금해준 학비로 편안히 시를 쓰고 지내는 자신의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며 자책한 시, '쉽게 씌어진 시'는 읽을 때마다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는 기도와 같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맑지 않으면 시의 원천(源泉)도 고갈되고, 진실과 순수가 근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단 한 줄의 글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시인의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지도 못했고, 부단히 노력하는 시인도 아니다. 더구나 오랜 타국생활로 시상이나 어휘가 풍부하지 못해 시를 발표할 때마다 부끄러움으로 오랜 망설임을 거치곤 한다. 스스로 너무 쉽게 시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때면 비록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자주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를 감상하며 시작태도를 반성한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 시단(詩壇)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다.
시인이 단 일년 수학한 일본의 도오시샤 대학에서도 그의 시비(詩碑)를 세워 추모하고, 일본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일본 학생들이 국가와 이념을 초월하여 그의 사상과 문학을 배우고 그의 시를 암송하는 것을 볼 때, 좋은 시는 오래오래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삶의 위안이 되고, 위대한 시인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그의 이름이 남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 시대에 시인이 많지만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길 위대한 시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행히 내 주위에는 좋은 시인분들이 많이 계시다. 비록 인터넷을 통한 영혼의 교류이지만 나는 그 분들이 얼마나 숭고한 자세로 시를 창작하는지 알고 있다. 좋은 인품과 정직한 시어로 시창작을 하시는 그 분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배우는 자세로 용기를 내어 시를 쓰고 있다.
그리고 희망한다. 나와 같이 한시대를 공존하며 시를 쓰는 사람들 중에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인이 많이 탄생하기를.


(2002/11/19- 문학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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