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2009.06.21 14:34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열여덟
앞산 먼산의
틈새에 끼어
기울어진 어깨
너머로
춘화도 훔쳐 보며
허상을 만들던
늘 허기지고
아무도
누구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던
어두운 자취방에
꼭꼭 닫힌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한자락
받고 누워
너덜한 벽지위에
시 한수 갈겨 쓰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의미를 심어 주다
제 풀에 지쳐
어두운 하늘 향해
수음 한번
매마른 땅위에
오줌도 한번 갈기고
태산을 깎아 내리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리고
시든 꽃도 다시 피우리라
그랬던
그 시절
나의 열여덟
다시는 오지 않는
가진 것 없던
열여덟
앞산 먼산의
틈새에 끼어
기울어진 어깨
너머로
춘화도 훔쳐 보며
허상을 만들던
늘 허기지고
아무도
누구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던
어두운 자취방에
꼭꼭 닫힌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한자락
받고 누워
너덜한 벽지위에
시 한수 갈겨 쓰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의미를 심어 주다
제 풀에 지쳐
어두운 하늘 향해
수음 한번
매마른 땅위에
오줌도 한번 갈기고
태산을 깎아 내리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리고
시든 꽃도 다시 피우리라
그랬던
그 시절
나의 열여덟
다시는 오지 않는
댓글 5
-
최영숙
2009.07.22 22:09
-
강성재
2009.07.26 14:56
열여덟에 품었던 그 크나큰 야망들이
그 꿈들이......
글쎄요, 하나의 허상을 만들어 놓은게지요.
모든게 한마당 헛발질속에 사라지고
백발성성한 한 중늙은이만 남았습니다.
최형의 꿈은,야망은 결코 헛발질 한것은 아니지요?
-
최영숙
2009.07.26 22:13
저는 어린 시절에는 너무 심심해서
글이 적혀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읽어 댔어요.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당숙들이 들여다 보던
사랑, 아리랑 그런 잡지도 샅샅이 읽었지요.
중간 중간에 끼어 있던 핑크색 페이지가
얼마나 도발적이었던지요.
지질이 안 좋아서 아주 미세하게 구멍이
나 있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떠 오릅니다.
낡아서 닳아진 만화책을 갖고 다니던 엿장수 아저씨.
그것하고 맞 바꾸려고 온 집안의 고물을 찾다가
댓병짜리 소주 쏟아 버리고 급히 쫓아가
그 만화책을 손에 넣던 감격.
그런 것들이 다 심심해서 일어난 일들이지요.
그런데 열여덟살 무렵에는 사는 게 시들해졌어요.
알거 모를 거 다 알았다 싶어지고 나니까
어른 들 세계는 더욱 흥미 없어지고....
빨리 나이 들기를 기다렸지요.
지금은 더 나이들어서 세상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왜냐, 이제는 궁금한 게 딱하나 남았거든요.
홀홀히 세상 떠나는 일.
이것보다 더 궁금한 일, 제게는 없습니다.
사고로 두어 번 그 앞에까지 가본 적이 있는데,
무상 그 자체여서 머리를 갸웃했습니다.
드라마틱하게 건너가고 싶은 저는, 적어도 다음
세상을 맞이하려는 준비를 여기에서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금의 삶을 충일하게 보내고자 합니다.
저는 덕분에 나이에 대한 애달픔이 적습니다.
이것이 야망인지 꿈인지 잘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이것들을 위하여 달려 온 결론 밖에는
남는 것이 없군요.
이제 좀 더 나이들면 인생을 달관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도도한 위엄이
강형의 백발 속에 가득하실 줄 믿습니다.
-
강성재
2009.07.27 14:27
인생을 달관한 사람만이 갖는 여유로움,그런것들이
제가 아니라 최형에게서 느껴집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신 듯 합니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달관의 자세,
그 밑바탕에는 절대자에 대한 강한 믿음과 경외심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궁굼해서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궁굼증이 아니라 훗날
신의 곁으로, 내 본향으로 가고 싶다는 의지의 다름
아니겠지요
그러나 서두르지 마시지요
그분께서 최형에게 주신 막중한 임무가 아직은
많이 남았을 겁니다
그중 하나가 아직 신의 곁으로 귀의 하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 하고 있는 어떤 풋내기 시인 하나를
신의 무릎밑에 엎드리게 해야하는 것이란걸
잊지 마십시요
-
Esther
2013.05.11 14:13
詩도 너무 좋지만 두 분의 대화가 더 재미 있네요. 우연히 강 작가님 (? 시인)의 글을 보다가 너무 재미 있어 자꾸 댓글을 달게 되네요. 제 나이 열여덟때랑 이 시에 나와 있는 그 때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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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산, 그 먼산의 틈새에 끼어 기울어진
어깨 너머로 춘화를 훔쳐보며 허상을 만들었다.
........
마치 장편소설의 프롤로그를 읽는 듯 합니다.
그 허기진 고독의 시간이 우리들에게 없었다면
지금쯤 얼마나 허청거리고 있겠어요.
나무 한그루 풀한포기에도 의미를
심어주던 젊은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 태산을 깍아 내리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리고 시든 꽃을 다시 피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라고요?
그건 열 여덟살의 꿈이었다고요?
오레곤, 콜롬비아 강변에 서시면 그 꿈이 이루어
졌다는 생각이 안드시나요....
이렇게 열 여덟살, 고독하고 영민했던 시절이
꽃으로 피어 났건만... 시인은 아직도
방문 꼭꼭 닫고 어두운 하늘만 보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