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2009.06.02 14:37
내 나이의 간격만큼 위아래로
안동군 서후면 광천동
이육사와 내가
한마을에서 태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해도
기쁘기 한량 없다
그는 청포도 익어가는 고향을 그리며
광야를 휘달렸고
나는 청포도 그늘 아래서
어린 시심을 키웠다
그의 생가에 있던 포도나무
나의 생가에도 있었고
어머니는 칠월이면
하이얀 쟁반에 청포도 가득 담아
조부님 상위에 올렸었다
십리길도 않되는
그의 생가와 나의 생가
오늘 그와 나의 고향에
청포도 그늘 없고
모시적삼 없어도
그가 꿈꾸던 하늘은 열려있고
망국의 한을
시 한수로 달래며
광야에서 목놓아 울때에
나의 증조부님도 그와 함께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북경과 연변의 하늘을 달렸다 했다
오늘 바람부는 그의 생가
그의 시비 앞에
그를 흠모하는 후학들이
그의 흔적을 읊고 있지만
어쩌면 그는
그가 꿈꾸는 통일조국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
아직도 광야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동군 서후면 광천동
이육사와 내가
한마을에서 태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해도
기쁘기 한량 없다
그는 청포도 익어가는 고향을 그리며
광야를 휘달렸고
나는 청포도 그늘 아래서
어린 시심을 키웠다
그의 생가에 있던 포도나무
나의 생가에도 있었고
어머니는 칠월이면
하이얀 쟁반에 청포도 가득 담아
조부님 상위에 올렸었다
십리길도 않되는
그의 생가와 나의 생가
오늘 그와 나의 고향에
청포도 그늘 없고
모시적삼 없어도
그가 꿈꾸던 하늘은 열려있고
망국의 한을
시 한수로 달래며
광야에서 목놓아 울때에
나의 증조부님도 그와 함께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북경과 연변의 하늘을 달렸다 했다
오늘 바람부는 그의 생가
그의 시비 앞에
그를 흠모하는 후학들이
그의 흔적을 읊고 있지만
어쩌면 그는
그가 꿈꾸는 통일조국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
아직도 광야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0 | 나의 아내는 | 강성재 | 2009.09.19 | 683 |
219 | 어느 무덤가 망초꽃 | 강성재 | 2009.09.15 | 575 |
218 | 홈 리스 리사(Lisa) | 강성재 | 2009.09.14 | 510 |
217 | 되짚어 보는 발자국 [2] | 강성재 | 2009.09.06 | 610 |
216 | 바위섬 [1] | 강성재 | 2009.07.19 | 521 |
215 | 부끄러워,부끄러워,너무도 부끄러워 | 강성재 | 2014.05.01 | 256 |
214 | 열여덟 [5] | 강성재 | 2009.06.21 | 642 |
213 | 먼 훗날 | 강성재 | 2009.06.13 | 509 |
212 | 가로등 | 강성재 | 2009.06.13 | 444 |
211 | 신호등 앞에서 | 강성재 | 2009.06.12 | 479 |
» | 이육사 [1] | 강성재 | 2009.06.02 | 594 |
209 | 슬픈 그대 뒷모습 | 강성재 | 2009.06.01 | 601 |
208 | 그리움 | 강성재 | 2009.06.01 | 433 |
207 | 思母曲 [1] | 강성재 | 2009.05.13 | 522 |
206 | 슬픈봄날 [5] | 강성재 | 2009.05.08 | 604 |
205 | 쉰여섯의 참회 | 강성재 | 2009.03.27 | 502 |
204 | 꼽추 2 [3] | 강성재 | 2009.03.26 | 491 |
203 | 분재 | 강성재 | 2009.02.17 | 514 |
202 | 겨울에는 사라지는 마을 | 강성재 | 2009.03.26 | 410 |
201 | 무료한날의 하오 [1] | 강성재 | 2009.02.19 | 465 |
안동군 일직면 조탑동에서 태어나서 단편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지만,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분과 같은 동네에 살았고 또 같은 교회를 다녔죠. 그 분의 삼촌 집이 저희 집이랑 가까웠는데 그 분은 주로 교회에 계시다가 나중에 빌벡 (?) 계곡이란 곳으로 가셔서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사셨더라고요.
작년에 한국 가서 그분이 사시던 곳도 방문하고 그랬어요.
시인 이육사님이 안동군 서후면에서 태어난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