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257
어제:
317
전체:
1,317,734

이달의 작가
수필
2015.07.06 16:05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조회 수 30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벽 예배 가는 이른 시간, 철로를 끼고 있는 동네 큰길 가에 유럽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서로를 보듬으며 서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상황이지? 이 새벽에? 갸웃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연달아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자세의 그들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새벽에는 우산 속 꼭 껴안은 채였는데 그 모습이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워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두었다.

눈 뜨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아니 꿈속까지 한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 그들의 사랑도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 같다. 무지갯빛 미래를 기대하며 결혼행진곡에 발맞춰 들어갔는지 혹은 갈 예정인지 모르지만, 서로를 향해 연연하는 첫마음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쓰면 한 줄 밖에 안되는 결혼생활인데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것, 요즘 부쩍 실감한다.

흔히 '인생에서 피해야 할 3가지'로 초년 성공, 중년 상처, 노년 빈곤을 든다. 그중 중년 상처는 배우자의 죽음과 이혼이라고 하는데 죽음이야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화합을 이루지 못해 깨지는 가정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최근 몇 년 사이 가까운 지인 중에 이혼한 가정이 몇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정했던 순간들을 삭제 버튼 하나로 끝낸 것 같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 또래 이웃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이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라며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알고 있는 말인데도 그날따라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아들 내외가 헤어져 손자 둘을 맡아 키웠다는 이웃 팔순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들 좋아서 결혼했고 자식 낳았으면 어쨌든 책임져야지, 노기 띤 음성에 아들을 향한 원망이 가득 배어났다. 하지만 곧이어 손자 자랑이 늘어지셨다. 돈 한 푼 안 받고 끝까지 다 들어드렸다.

오래 전 이휘향이라는 탤런트가 출연한 드라마가 있었다. 극 중 이휘향이 결혼을 앞둔 조카에게 들려주는 대사 중에 '결혼생활, 마음에 맞으면 얼마나 좋은데'라는 말이 있었다. 평범한 그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고 대사에 딱 맞는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화사한 표정은 또 얼마나 실감이 나던지. 사실 그 대사는 드라마 작가의 결혼에 대한 일가견임을 알지만, 아무튼 그 후 나는 이휘향의 팬이 되었다.

'우산 속의 연인'이라는 내가 만든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사랑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낭만은 줄어들고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이 반감된다 할지라도, 이 지구 상에 당신이 있어 정말 좋다는 고백과 함께 깊은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세월이 더 지나 황혼빛 뉘엿뉘엿 질 쯤이면 두 손 꼭 잡고, 철길 따라 흐르는 큰길 가에서의 뜨거웠던 새벽을 회상하며 천천히 공원을 거니는 먼 훗날의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6/23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9 무너진 나무 한 그루 오연희 2015.07.07 135
»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302
327 수필 애리조나, 영국, LA에 살아보니 오연희 2015.07.06 316
326 수필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시간 오연희 2015.07.06 305
325 수필 '드롭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오연희 2015.07.06 190
324 수필 오케스트라의 단원 선발기준은? 오연희 2015.07.06 113
323 수필 미국에서 꿈꾸는 '지란지교' 오연희 2015.07.06 237
322 수필 아주 오래된 인연의 끈 오연희 2015.07.06 306
321 수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오연희 2015.07.06 157
320 수필 [이 아침에] 못 생겼다고 괄시받는 여자 1/24/2015 오연희 2015.01.25 69
319 수필 [이 아침에] 중국에서 온 '짝퉁' 가방 1/7/2015 오연희 2015.01.09 58
318 수필 [이 아침에]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이 12/19/2014 오연희 2014.12.30 257
317 가을 길을 걷다가 오연희 2014.11.26 286
316 풍선 오연희 2014.11.26 224
315 호흡하는 것들은 오연희 2014.11.26 318
314 수필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264
313 수필 [이 아침에] 성탄 트리가 생각나는 계절 11/13/2014 오연희 2014.11.26 392
312 수필 찾지 못한 답 오연희 2014.10.24 256
311 수필 [이 아침에] "엄마, 두부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10/22/14 오연희 2014.10.24 577
310 수필 [이 아침에]초식남과 육식녀의 사회 10/6/14 오연희 2014.10.07 36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