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나무 한 그루
-위안부 할머니시여 -
산책길에
넘어져 있는 늙은 나무 한 그루
둥치가 들린 채 벌렁 누워있다
뿌리들 사이로 삐져나온 지하수 파이프는
둥치를 깊숙이 관통한 채
꽂혀 있는 닙본도(日本刀)
살아 있는 심장에 찔러 넣어
죽어도 빠지지 않는 칼날을 붙잡고
아, 아직 피를 토해내고 있는
몸부림치는 소리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한마디만 해 달라 그리 외쳐대는데
인두겁을 쓴 저 짐승들
끝까지 짐승으로 남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발걸음만 재촉하며 돌아가는데
삐죽 솟은 지하수 파이프 위에는
다람쥐 한 마리 올라앉아 있고
나무는 이제 곧
토막토막으로 잘려나가 사라질 모진 생
눈물겨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