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오연희
뒷마당 한 구석에
초라한 몰골의 밥솥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빙 둘러 붙어있던 걸치개는 부서져나가고
몸통만 덩그렇게 남은
저 알몸 속에서
부슬부슬 익어가던 구수한 살 내
벌떡벌떡 숨을 몰아 쉬던 입술
가슴을 열면 이팝꽃 눈부시던
풋풋한 한 시절 있었다
불더미에 얹혀서도 성급히 타오르지 않던
뭉근한 기력을 다한,
퍼주고 또 퍼주고
긁히고 긁혀 얇아진 바닥
탄탄하던 몸
봉긋 펼쳐져 날아갈 것만 같던 치마자락
그 윤기 흐르던 처음도
거친 마지막도
훌훌 털어버린, 허방 속에
햇빛과 바람
웬종일 소슬거리고 있다
YTN 방송 '동포의 창' 방영(2007. 2.22)
-'심상' 2007년 4월호-
성숙하고 아름다운 시심을 훔쳐보고 갑니다.
오연희 (2007-01-22 13:52:11)
선생님...
한국은 많이 춥지요?
포근한 엘에이도 올겨울은 제법 쌀쌀합니다.
짧은 흔적이지만 긴 무엇보다도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허 경조 (2007-01-23 11:03:42)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간의 흔적을
아쉬어하는 마음이 늘어나나 봅니다.
왜 그런가하고 생각해 봤더니 그 생각의 끝에 본향을 향한 마음이 꺠달아집니다.
역시 좋은 시어와 시심에 감사드립니다.
오연희 (2007-01-24 16:02:19)
백지를 보면 캄캄해 질때가 있습니다.
언어로 만들어지지 않는 생각 붙들고
힘들어 할때..
흔적이 주는 기쁨으로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송이 (2007-02-05 17:01:58)
안녕요~
필름이 2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ㅎㅎ 그래도 마음은 날마다 더 윤기나게 흐르겠지요~ ^^*
오연희 (2007-02-06 11:42:31)
송이시인..
첫흔적이네..
반가워라^^
미주문협의 이뿐이 송이시인이 입주하니까
온동네가...보글보글 꽃이 피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