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핑만 잘하면 횡재하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연말 샤핑 광고에 마음이 동했다. 사이트 표지에 등장한 엄청난 세일가격에 흥분해 클릭, 클릭, 쑥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분명히 세일 상품을 클릭했는데 들어가보면 멀쩡한 정가품이고 어떤 사이트는 아예 미싱된 페이지라는 안내글이 떴다. 상당히 유명한 회사들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가 아주 가관이다.
사이버 샤핑, 이리저리 헤매다보면 어쩜 시간이 그렇게 잘 가는지 목적달성은 못하고 몇시간 뚝딱 그렇게 보내고 나면 허망하기 짝이없다. 시간만 홀랑 잡아 먹히고 건진 것은 없고 머리가 욱신거렸다. 진통제 한알 입에 넣고 생각했다. 그래, 발품을 팔자. 눈으로 직접 보고 사는것이 맞는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후에서야 슬슬 밖으로 나가보았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전날부터 세일을 시작한곳도 많다고 하니 어쩌면 제 날 저녁은 파장분위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가보니 웬걸, 파킹장마다 정말 난리도 아니다.
파킹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운 좋게도 오늘의 목적지인 샤핑몰 입구와 가까운 명당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징조가 괜찮았다.
그러나 마음에 들면 사이즈가 없고 사이즈가 있는것은 도무지 내 스타일이 아니고 그렇게 왔다갔다 몇번 돌아보고 났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시간은 흐르고 기력은 딸리고 샤핑도 중노동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이 갔다.
문을 밀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아주 씁쓸했다. 원하는 물건을 사지 못한 아쉬움 보다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훨씬 의미있는 다른 모임을 뒤로하고 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미국에 살면서 한번도 연말 세일 대열에 참여한 적이 없다. 모두 다른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샤핑에 마음을 쏟는것일까. 그래, 남편의 빈자리,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든다. 딸과 아들이 멀지 않은 곳에 살긴 하지만 모두 엄마 품을 떠났고 몇 달 전 남편까지 다른 주로 장기 출장을 떠났다.
남편이 하던 비즈니스를 맡아 참으로 긴장되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시간만 나면 샤핑을 했다. 남편과 함께하던 시간을 대충 샤핑으로 때우고 있었던 셈이다. 문득 ‘샤핑 중독증에 걸린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던 한 지인의 한탄의 말이 떠 오른다.
샤핑 중독자의 90%가 여성이라고 한다. 샤핑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려는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샤핑을 이용하며, 샤핑을 통해 뿌리 깊은 허무감, 갈등 등을 외부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사지 않으면 손해 볼 것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혹, 가게 하는 광고, 원가가 의심이 갈 정도의 높은 할인율 앞에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내 지갑은 톨톨 털려나가게 되어 있다. 외로움의 빈자리에 무엇을 넣어야 할 지의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시간과 기운을 그렇게 소진하고 얻는것이 얼마나 되나 따져볼 일이다. 잠시 샤핑의 여왕이 되려다가 내 본래의 신분인 편안한 무수리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2011.12.15 미주한국일보 -살며 생각하며-